데일리트래블러 : 3/24

출퇴근 이야기

by soormj

한 시간 반, 물론 편도일 때다. 왕복이면 세 시간. 그것도 교통상황이 ‘정상’이라는 가정하의 이야기이다. 월요일 아침이나 금요일 저녁, 혹은 어떤 이유에서 세상이 나를 미워하기로 마음먹는다면 하염없이 늘어진다. 이게 무슨 이야긴고 하면 서울 은평구에서 살면서 판교에서 일을 하는 이의 출퇴근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내 차 안에서 보낸다.


운전을 하며 하루에 세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대개는 연민(“너무 힘들겠다.”), 의아함(“대체 왜 이사를 안 하는 거야?”), 질타(“너무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가 이어진다. 사실 나조차 가끔은 서울과 판교 그 사이 어디쯤, 집도 직장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사는 기분이다. 이렇다 할 대답을 찾지 못하는 나는 대개 그때 그때 떠오르는 말로 적당히 대답을 내놓는다. ‘참을만해요’, ‘이사가 보통일이어야지 말이에요.’, ‘조금 일찍 나오거나 늦게 퇴근하면 그래도 이십 분 정도는 줄일 수 있어요.’


판교로 이직하기 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었다. 지루할 수밖에 없는 지하철 속의 시간에서 나는 늘 유희거리를 찾는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은 죄다 읽어봐야 하는 활자 중독증이 발병된다. 책을 읽거나, 지하철 속 광고를 읽거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무엇을 읽는지 책 표지를 읽는다. 책을 읽기 곤란한 상태이거나 몸 상태일 때는, 유튜브를 본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다가, 과학이나 역사 교양 채널도 건드려 본다. 내 알고리즘은 운동, 영화, 지구반대편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사건,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있는 음식의 위험성, 종국에는 고양이 영상까지 뜻밖의 여정을 선사한다. 음악을 찾아 듣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팬인 흑인음악을 기본으로 해서, 실시간 차트 곡,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최신곡을 듣는다. 어느 영상에선가 들었던 배경음악이 뭐였는지 찾아본다. 이러한 자극 추구에는 어떠한 구조나 방향성이 없다. 그때 그때 내키는 것들을 선택하고 머릿속에 쌓아나간다. 나는 어쩌면 비물질적 수집강박장애 — ‘정신적 호더(hoarder)’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 귀찮아지면, 스마트폰을 들고 글을 쓰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생각을 써 내린 후, 문장을 고치고, 고친 문장을 또 한번 고친다. 어순을 바꾸고 문장의 순서를 바꿔보기도 한다. 작게 소리를 내어 읽어보며 입 위에서의 느껴지는 맛은 어떤지 간을 본다. 이런 과정은 나에게 일종의 실험이자 퍼즐같은 유희이다. 글 쓰는 것 마저 힘들 때에는 작은 노트를 꺼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내용 —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쓴 글귀나, 그림(이라지만 도형 같은 것들 뿐이지만), 그냥 왠지 자국처럼 머릿속 어딘가에 눌어붙어 있는 개념적인 단어들을 — 을 낙서처럼 끄적이기도 한다.


나는 늘 자극을 좇는다. 내 뇌는 인풋(책 읽기, 음악 듣기, 영상 보기) 혹은 아웃풋(글쓰기, 낙서하기) 둘 중 하나의 상태이다. 마치 창고형 마트에 들른 소비중독자의 쇼핑백 같은 것이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주워담고 본다. 어느새 쇼핑백 용량을 넘어서면 넘쳐서 밖으로 새어흐른다.


반면, 매일같이 출퇴근길을 운전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일이다. 내비게이션이나 표지판을 볼 필요도 없이 아주 오래된 습관처럼 비슷한 곳에서 차선을 바꾸고, 이미 알고 있는 과속 카메라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늘 그곳에 있는 출구를 통해 빠져나온다. 변수라고 해봐야 앞차와의 간격 정도고 그 마저도 이제는 본능적으로 조절된다.


이러한 과정 에서 나는 하루에 세 시간씩 뇌에게 인풋도 아웃풋도 아닌 ‘정지상태’를 허락한다.


그런 이유에서 차에서 보내는 세 시간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출퇴근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던 날들보다 역설적으로 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착각마저 든다. 이 모든 게 착각일지라도 — 이 정도면 지금 내게 딱 필요한 정도의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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