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duties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고 문이 열린다. 내릴 사람들은 모두 내렸고, 탈 사람들은 모두 탔다. 그러나 아직도 문이 계속 열려있는 상태. 이럴 땐 엘리베이터 버튼 쪽에 자리 잡은 사람이 닫힘 버튼을 눌러주면 참 좋을 텐데, 당사자는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문은 잠시 — 불편함을 느끼기엔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낯선 사람에게 ‘닫힘 버튼 좀 눌러요’라고 타박하기에는 조금 짧은 어정쩡한 시간 — 후 닫힌다.
법적 근거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아니지만 엘리베이터 버튼 쪽에 선 사람은 상황에 맞게 열림과 닫힘 버튼을 눌러줘야 하는 아주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적 책무(social duty)를 가진다. 마치 비행기 비상구 좌석에 앉은 사람은 비상시에 대피를 도와야 하는 책무를 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 가끔 ‘엘리베이터 버튼의 책무’를 등한시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흔히 창작물 속 슈퍼히어로들은 법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존재들인데, 어디선가 가면을 뒤집어쓴 사람이 나타나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눌러주고 홀연히 사라져 주길 기대한다.
이런 법이 생기는 건 어떨까? — 엘리베이터 버튼 제어권자 선임법.
엘리베이터 버튼 쪽에 서는 사람은 신성한 버튼 제어의 직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선서한다. 만약 이 직무를 수행할 자신이 없어지거나, 불가능한 상황이 오면(급하게 메시지에 답장을 해야 하거나, 지금 보고 있는 유튜브 영상이 너무 흥미롭다면) 버튼으로부터 두 발짝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써 사임 의사를 엘리베이터 속 모든 구성원들에게 밝힌다. 보궐절차는 간단하다.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이란 모두 ‘적정거리’라는 반발력을 가진 원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또 다른 누군가가 버튼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이 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바로 다음 층이 올 때 엘리베이터에서 추방된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몇 가지 법률을 더 상상해 본다. 이를 테면 ‘편의점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다량의 구매 — 바구니 두 개 이상 — 를 할 예정인 사람은 먼저 계산대에 다다른다 해도 제일 뒷 순번을 받는 법’이라든지, ‘미리 카드나 현금을 꺼내놓지 않고, 얼마입니다 라는 대답을 듣고서야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사람에게는 세 마디 이하의 육성 비난이 허용되는 법’ 혹은 ‘흡연 중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가 시야에 보였을 때 즉시 담뱃불을 끄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3개월 금연형’ 같은 법들 말이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타인의 시간이 내 시간의 가치와 동일하고, 타인의 수고가 나의 수고로움과 동일하며, 타인의 건강은 내 흡연의 즐거움보다 훨씬 소중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 이런 법안들은 필요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필요한 건 ‘나의 평범성’에 대한 가치관 교육이라거나, 조금 다른 의미의 차별 금지법 — 나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 — 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나친 공상과 사고적 비약을 이용한 혼란 금지법’이라는 게 생긴다면 — 나는 유죄다. 형벌은 엘리베이터 버튼 앞 담당, 형량은 종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