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lighten Lightly
책.. 좋아하세요?
진심입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기 계발서에 대한 혐오가 만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구체적인 책 제목을 언급하면 실례가 될 수 있으므로, 있을 법한 제목을 만들어 보자면
<당신의 출근길은 아름답다> 지옥철에 시달리며, 월급도 짠 회사로 매일 향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는 내용
<좌절도 청춘의 특권이다> 나이가 들면 기대감도, 도전의 용기도 줄어드니까 젊을 때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도 해보라는 내용
<마음이 아플 땐 어느 병원을 가죠?> 당신을 위로, 위로 그리고 또 위로하는 내용.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기 전엔 아프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었는데, 읽고 나면 그제야 ‘나는 힘들었던 거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런 책들은 한 때 유행처럼 붐이 일었지만, 이들에 대한 조롱과 혐오 역시 또 다른 유행이 되어 뒤따랐다. 현실적인 이야기 없이, 덮어놓고 보내는 위로와 칭찬, 그리고 응원은 아무리 예쁜 단어로 치장해도 결국에는 알맹이 없는 가짜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평가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마치 이런 책을 읽는 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을 하는 것처럼 치부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왜냐면 ‘자기 계발서가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 대부분은 자기 계발서는커녕, 어떤 책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 오토바이 타기가 취미라는 사수가 취미를 물었다. 딱히 취미랄 건 없지만, 책을 좋아하긴 하니까 독서가 취미라고 대답했다. 그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살짝 뒷걸음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너 참 재수 없다.’ 아니, 내가 책을 잘게 찢은 다음 토마토소스에 볶은 후 고수를 얹어 먹는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책을 좋아한다고 했을 뿐인데.
그 말이 기분 나쁘다는 생각보다, 왜 책 읽는 게 재수 없는 행위인지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오히려 차를 타고 도로를 나서면, 당신 같은 (일부) 바이커들이 훨씬 더 재수 없는 짓을 하던데.
아마도 나는 단지 ‘책 읽는 걸 좋아합니다.’라고 했지만, 그의 귀에는 ‘난 이렇게나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 이 바이크나 타는 미개한 인간아(이렇게 말한 적 없음)’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텍스트힙’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책을 좋아합니다’라는 말은 부담스럽다.(‘글쓰기를 좋아해요’도 마찬가지) 단순히 취미의 고백일 뿐인데, 젠체하는 것으로 오해될 위험이 있다. (아니면, 시류에 편승한 힙스터로 치부되거나.) 영화나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지만, 유독 ‘책’이라는 한 단어에만 이상한 무게가 있나 보다.
아마 책이라는 걸 생각보다 대단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독서는 지적인 행위이고, ‘책 보는 걸 좋아해요’라는 걸 ‘공부하는 걸 좋아해요’라고 비약해 버린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사실 나는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학생 때 진작 깨달아야 했는데, 서른이 넘어서야 그걸 알게 되다니)
하지만 나에게 독서란 영화나 음악 감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유희가 목적이다. Read for Fun. 무언가 배우거나 느끼는 건 부수적인 목적일 뿐, 그래서 부담감이 없고, 그래서 끝까지 봐야 한다는 부담은 더더욱 없다. 재미가 있으면 읽고, 재미가 없어지면 책장을 덮을 뿐(내 책장의 많은 책 중, 절반만 읽어보았고 그중에서도 절반만 완독 했다. 그럼 나머지 절반은? 인테리어 소품일 뿐 — 물론, 더 이상 꽂을 데 없어 여기저기 쑤셔놓은 모양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얻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심오한 영화를 이해하고 감동받는 것만큼이나, 팝콘무비의 화장실 유머에 킬킬대는 것도 즐거운 영화 감상인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각 잡고’ 책을 볼 때도 있지만, 마치 유튜브 쇼츠를 돌려보듯, 엎드려서, 술을 마시면서, 심지어는 라면 물이 끓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책을 읽기도 한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내용이 지루하거나 이해되지 않으면 과감히 몇 장을 넘겨버리기도 하고, 결국 끝까지 가지 못한 채 책장을 덮어버리기도 하면서.
그런 점에서 자기 계발서에 대해서 딱히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손가락질할 이유도, 찬양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책을 손에 든 사람을 보면 — 그것이 자기 계발서이든 무엇이든 — 같은 취미를 가진 동족을 만났다는 기분에 반가움이 앞선다. (뭇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알맹이가 없는 가짜 위고, 가짜 감동이면 또 어떤가. 위로받은 감정만은 진짜인데.
그리고 자기 계발서로는 진정한 자기 계발이 되지 않는다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 계발 :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
자기 계발서라는 게 별거냐. 읽고 자기가 계발되면 그게 자기 계발서지. 그런 의미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자기 계발영화이고, <슬램덩크>는 자기 계발만화다. 빌리아일리쉬의 음악들은 자기 계발음악이고, <무한도전>은 자기 계발 예능이었다!
제육볶음은 자기 계발음식임은 물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