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로인데 세상만 달라졌다.

Age ages

by soormj

보통의 날, 보통의 오후였다.

사무실에서 보내는 보통의 무료함.


사무실 의자에 퍼져 멍하니 앉아있다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딱히 기분이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무료한 오후를 버티기 위해 내 무의식이 자동재생시킨 플레이리스트였다. 아마도 마빈 게이나, 보이즈투맨이었을 것이다.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흥얼거렸다면 라우브나 찰리 푸스였겠지만, 이 옛날사람의 무의식은 그보다는 훨씬 클래식할 테니까.


마침 내 자리를 지나치던 20대 후반의 직원이 질색했다.


“어우 아저씨 같아요.”


“… 그거야 아저씨니까”


그제야 내가 흥얼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조금 멋쩍어졌다.

그건 그렇고, 아저씨니까 아저씨 같은 건데, 그게 왜 흠이 되는 거지? 아저씨가 아저씨 같아지면, 그때서야 나를 비난해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너에게 “어우 20대 같아” 하고 핀잔을 주지는 않잖아.


그리고 아저씨 같다는 것이 흥얼거림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내 선곡이 옛날 곡이라서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닐 거다. 이 친구가 마빈 게이나 보이즈투맨을 알지는 못할 테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10대,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아저씨는 확실히 아니었을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렇게 흥얼거리고는 했었는데, 왜 이게 아저씨 같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내가 그렇게 조숙했었나? 아닐 거다. 그 시절의 나는 차마 회상조차 민망할 정도로 철이 없었고 어렸었다.


그게 아니라면, ‘정체성’이란 그 본질보다는 시선에 의해 정의되는 것일까? 십 대의 나나, 서른아홉의 나는 똑같은 행동을 하는 똑같은 사람인데(다만 체력은 줄고, 체지방은 늘었을 뿐), 2000년대 초반의 세상은 그걸 10대로 받아들여주었고, 2020년대는 아저씨로 정의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대로인데, 세상만 달라졌다.


예전에는 내향적이고, 혼자 있는 걸 외향성이나 활발함이 떨어지는 것이라고들 생각했었고,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알게 모르게 콤플렉스였던 것 같다. 단점을 고쳐보고자 억지로 어울리고 그걸 즐기는 척했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인싸’라는 단어가 조롱이 되는 세상이다.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힌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지구의 회전 방향이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90년대 후반, 랩음악을 좋아하던 내 취향은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다. 그러다가도 어느새 TV에서는 랩음악을 소재로 예능 방송되더니, 이제는 오히려 유행이 지나고, 한물갔다는 느낌까지 든다. ‘하우스오브카드’가 보고 싶어서 넷플릭스를 초창기에 구독했을 때만 해도, 공중파 드라마나 예능에 대한 대화에 잘 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OTT 2~3개 구독은 물론이고, 공중파 자체를 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문득,

변하지 않으려고 혹은 변하려고 너무 발버둥 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어딘가에 맞추어보려고 발버둥 쳐봐야, 그 세상 자체가 계속 변하고 있으니까.

지금의 나는 멋없는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나더러 멋있다고 해주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보고 ‘젊다’라고 해주는 세상도 언젠가는 또 오지 않을까.

세상 일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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