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글쓰기란?

Writing is like the way I write

by soormj

혹자는 글쓰기를 조각에 비유한다. 흐릿한 감정과 인상, 개념 같은 원석에서 시작해 불필요한 것은 덜어내고, 필요한 곳은 세밀하게 깎아내며 명확한 무언가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지 싶다. 어떤 사람은 제빵에 비유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디어가 숙성되는 과정을 강조하는 비유일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비유들이 있다.. 어떤 순간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사진, 정성스럽게 가꾸고 다듬는다는 점에서 정원 관리, 단어를 맞추고 조합한다는 점에서 퍼즐에 빗대기도 한다. 각자에게 글쓰기를 설명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은, 모두들 글 쓰는 방법들이 다르다는 뜻일 것이다.


나 역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혹시 언젠가는 ‘당신에게 글쓰기란?’ 하는 질문을 받을 것을 대비해, 나만의 글쓰기 비유 하나쯤은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글쓰기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Possible Anser 1. 나의 글쓰기는 ‘문득’입니다


매일같이 보고 겪는 광경에 문득이라는 두 글자는, 평화로운 인도에 난데없이 달려드는 급발진 차량처럼 예고 없이 뛰어든다. 한바탕 난리가 일어난다. 일상은 낯섦이 되고, 확신은 의문으로 바뀌어 버리는 이른바 감상의 아비규환 상태가 된다.


* 냉장고에 쌓인 음식들을 보며, 나는 이 것들을 내일을 위해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다 먹을 수 없기에 먹기를 '유예한'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 큰 문제없죠?’ ‘큰 문제없어요’하는 일상적인 업무 대화에서, 나의 ‘큰 문제’가 당신의 그것과 같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문득 든다. 나에게 있어 큰 문제란 중요한 자료에서의 계산실수인데, 당신은 외계인 침공과 같은 걸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문득’이라는 두 글자에서 시작된 낯선 감정들은, 가만두면 이내 불안감으로 번진다. 언젠가는 두려움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모든 글쓰기는 ‘문득’을 '문득'으로 봉합하기 위한 일종의 처방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Possible Answer 2. 나의 글쓰기는 ‘신사임당이 치마폭에 그린 그림’입니다.


치마에 생긴 얼룩 위에 포도송이를 그렸다는 일화 말이다. 작은 감정이 얼룩처럼 남아있다. 그 위에 나는 포도를 쓰고, 포도송이까지 써 내려간다.(큰 덩어리에서 시작해 덜어내며 완성시키는 ‘조각으로서의 글쓰기’와는 정 반대의 방식이다.)


영화 ‘8 mile’에서 주인공인 에미넴이 버스 뒷자리에 앉아 가사 노트를 쓰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는 지금 가사를 쓰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이 장면은 ‘라임’(rhyme)을 모으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때 흘러나오는 음악은 영화의 제목과 동일한 ‘8 mile’이라는 곡인데, 영화 장면에 맞게 편집된 버전으로, 전체 가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라임 부분의 가사만 흥얼거리는 식이다.


“닷다라(웅얼웅얼) feel like. 닷다라(웅얼웅얼) still might. 닷다라(웅얼웅얼) this fight. 닷다라(웅얼웅얼) still right”


그는 떠오르는 라임들을 노트에 쓴다. 아마 ‘feel like’과 ‘still might’ 사이의 적절한 가사를 찾아내겠지. 그러니까 지금 그가 끄적거리고 있는 노트는 가사노트가 아니고, 라임노트(rhyme note)인 셈이다.


내 메모장에도 감정의 얼룩, 혹은 나만의 라임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가 있다. 때로는 한 단락 정도의 분량이기도 하고, ‘기억은 회상을 통해 추억이 된다. 회상할 수 없는 기억들은 잊힌다’ 같은 문장이기도 하다. ‘감정의 몬더그린’, ‘행복함의 물가, 그리고 인플레이션’같이 단어들만 남은 경우도 있다. 언젠가는 이 것들이 포도, 그리고 포도송이가 되기를 기대하며, 그리고 나만의 8 mile이 되기를 기대하며 저장해 둔 나만의 라임 노트이다.


Possible Answer 3. 나의 글쓰기는 ‘정수기’입니다.


내 글들의 초안을 보면, 감정의 원액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온갖 단어와 표현들이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앞뒤가 맞지 않게 엉켜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손은 받아 적기만 한 버전이기에, 맞춤법은 물론이고 어떤 부분은 기호로 대체되어 있다. 영어나 비속어가 섞여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조금 과장해서) 이런 식이다.


* 초안 = 감정의 원액. unfiltered(unpurified? 정수기?), 회의록 초안 = 휘갈겨씀 -> 나중에 수정. 공장폐수, almost toxic. 앞뒤안맞음


나는 이 상태를 공업용 폐수라고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보고 듣고 느낀 후 배출되는 감정들은 유해할 정도로 탁하다. 이 폐수를 정수기 필터에 쏟아붓고 걸러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위 초안을 문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걸러진 ‘1차 정수’는 비로소 읽을 수는 있는 수준으로 바뀐다. 나는 이 문장을 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쓴다. 필요 없는 부분은 자르고, 허전한 곳은 메꾼다. 비유를 교체하고, 단어들의 위치를 바꾼다. 소리 내어 읽으며 발음이 매끄러운지도 체크한다. 그렇게 나온 문장을 다시 한번 똑같은 방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쓴다. 언제까지? “이제 마셔도 괜찮겠다” 싶을 생각이 들 때까지.


아무리 걸러내어도 맛을 볼 엄두가 나지 않으면, 내 정수기 필터의 성능이 좋아질 언젠가의 그날을 기약하며 다시 폐수보관함으로 돌려놓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다음과 같은 경고문으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글이 맛있거나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저는 ‘마실만 하다’ 정도를 최선의 목표로 잡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게으르다고 생각하시겠지만, 혹시라도 초안을 보시게 된다면 제가 의외로 부지런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혹시나 미처 걸러지지 못한 불순물 때문에 배탈이나 구토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엔 신속하게 가까운 서점으로 이동하신 후 ‘좋은 문장’들로 해독하시기를 권장드립니다.


그래서 결국 ‘나에게 글쓰기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답을 찾기 전까지 그 질문은 사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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