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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ㅇㅇ에는 인생이 담겨있다’라는 말이 있다. 보통은 한 분야를 깊이 탐구한 사람의 고찰이기도 하지만, 사소한 생각을 비약적으로 하는 개똥철학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같은 말인데도 어떤 사람이 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대접을 받게 된다.) ‘ㅇㅇ’에는 온갖 세상 잡다한 것들이 대입된다. — 바둑, 야구, 요리, 계절, 경영, 산책, 전쟁, 자연법칙, 만화, 운전 등등,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개념들이.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싶다. 단 하나 가진 내 머릿속에도 대충 열개정도 되는 인생관이 들어가 있다. —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인생관, 재무회계담당자로서의 인생관, 마흔이 다 되어서도 미혼인 사람의 인생관 등등. 각기 조금씩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약간씩 다르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지구상에는 약 1,200억 명의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나처럼 그 각각이 10가지씩의 인생관을 가졌다면, 무려 1조 2천억 가지의 인생이 세상에 존재했다가 또 사라진 것이다. 그토록 다양한 인생이 존재한다면, 어떤 것에 인생을 빗대든 그럴싸하게 들어맞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생에 대한 수많은 뻔하고도 식상한 비유들에, 굳이 내가 몇 가지 비유를 추가해 보려고 한다. 바라건대, 1,200억 명 중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인생의 법칙이기를.
1. 주정차금지구역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각자의 삶에는 타인이 침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영역이 있다. — 보통은 사생활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주정차금지구역에 떡하니 멈춰 선 차들이 흔하듯, 사생활이라고 부르는 영역을 굳이 비집고 들어가는 인간들이 있다. ‘여기는 주정차금지구역입니다’라며 불쾌한 기색을 보여도, 차를 빼기는커녕 ‘잠시인데 어때’, ‘주차장이 멀어서 불편하잖아’라며 오히려 큰소리친다.
2. 오프사이드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가상의 선을 넘는다면, 아무리 멋진 골을 넣는다고 해도 무효처리가 된다. 우리들에게도 암묵적으로 합의된 ‘선’이라는 것이 있고,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축구에서는 오프사이드를 범해도 파울로 기록되지는 않지만, 삶에서의 ‘선 넘음’은 파울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결과 — 경제적 성과, 사회적 명망, 때로는 힘들게 얻은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 무효처리가 되기도 한다.
3. 사칙연산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100 빼기 1’은 사실 ‘100 더하기 -1’이다. 마음과 인생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무언가를 덜 하는 것을 요구하고, 그런 것들이 유행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 ‘제거하려 하는 노력’조차 ‘무언가를 더 하는 것’이다. 나는 디톡스, 미니멀리즘, 힐링 같은 단어에서조차 쉽게 피로감을 느끼곤 한다.
4. 미국을 뜻하는 단어 U.S.A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우리는 함께하지만(Unification), 결국에는 갈라서고(Separation), 결국에는 혼자가 된다 : Alone.
5. 마우스 우클릭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선택은 대개 직관 — 좌클릭 — 의 몫이다. 하지만 그 대상을 더 깊이 있게 탐구하기 위해서는 우클릭 후 ‘속성’을 확인해야만 한다. (아닌가, 이건 너무 억지스러웠나?)
6. 엘리베이터 9층 버튼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이 비유는 너무 개인적이라 부연하지 않겠다.
(사실 고민해 봤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아, 언젠가 떠오르면 다시 적어보려고 한다.)
7. 숫자 571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그저 그것이 ‘가능한 결과 중 하나이기 때문에’ 발생할 뿐, 운명적인 의미나 심오함이 담겨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임의로 숫자 ‘571’을 억지로 인생에 비유하려 하듯, 때로 우리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씩 써 내려가다 보니 드는 생각 — 보편성은 특별함을 잡아먹는다.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실 어느 것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에 ‘아무거나’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막막해지는 것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것은 사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디에나 — 주정차금지구역이나 엘리베이터 9층 버튼에도 — 인생의 의미가 있다면, 과연 인생에 의미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 자판 왼쪽 구석의 ‘ㄷ’ 버튼을 한참 노려보며 인생의 의미를 읽어내려다 그냥 멈춰버린다.
어쩌면 우선은 마시던 커피를 끝내고, 주먹을 한 번 쥐었다 피며 손을 풀고,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써내리며 오늘 하루를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