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쓰기는 내 가장 오랜 취미다. 물론 영화, 해외축구, 음악, 독서 등에 순위가 밀린 적도 있었지만, 글쓰기야말로 가장 꾸준하게 즐겨온 취미이자, 유희, 그리고 일상이었다.
언제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된 기억 중 하나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주일에 한 편씩, 자유 주제로 글짓기를 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나는 일주일에 서너 편을 써서 낼 정도로 이 숙제를 좋아했다.
숙제의 숙(宿)에는 '묵다', '오래되다'라는 뜻도 있는데, 내 글은 일주일씩 묵히지 않고, 하루이틀에 하나씩 내보냈다는 점에서 진정한 '숙'제는 아니었던 걸까?
그리고,
선생님께 서너 명 몫의 첨삭거리를 안겨드린 점은, 이제 생각해 보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해보니, 그때 선생님의 심정이 조금은 짐작이 가네요.
2.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시절, 학교 문집에 실을 글을 하나씩 써 오라는 '숙'제가 있었고, 톨스토이의 <부활>에 대한 독후감을 제출했다. 10살 남짓한 아이가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썼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우리 집 책장은 7~8살 터울의 사촌형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기에, 아동시절에 '청소년' 수준의 읽을거리 밖에 없었다는 점이 (<부활>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비극이라면 비극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내 독후감에 대해 ‘비참하다'라는 단어의 반복을 지적하시고는, '좋지 않은 감정과 단어를 쓰면 좋은 글글이 아니다'는 이유로 다른 글을 써오라고 허셨다.
위 (1)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이해한다.
'매춘부가 된 여인, 그리고 과거에 그녀를 겁탈했던 귀족의 죄의식'을 초등학교 문집에 실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당시엔 내가 비참하다고 느꼈는데, 비참하다고 쓰면 왜 안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어쩌면 십 대에 일상적으로 비속어나 욕설을 달고 다녔던 것 역시, '좋지 않은 감정과 단어로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엄마, 아버지, 그리고 선생님.
제 십 대 시절은 결코 철없는 반항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문학적 실험'이었어요.
그리고 존나 망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