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 5km
집에 가서 달리기에 관한 짧은 글을 써야겠다.
나는 매일 달린다. 하지만, 긴 거리도 아니고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기 때문에 ‘러너’라고 불리기는 멋쩍을 정도의 수준이다. (사실 ‘나는 매일 달린다’라고 글을 시작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러닝이 워낙 유행이라, 그 매력에 대해 굳이 보탤 필요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몇 가지를 덧붙여보자면.
1. 준비할 것이 많지 않다. 물론, 좋은 운동복과 러닝화 같은 장비가 있으면 좋겠지만, 필수는 아니다. 한 번은 퇴근길에 한강을 뛰어보려고 운동복을 챙겨 출근했건만, 알고 보니 상의만 두 벌 챙겼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에도 나는 청바지를 입고 5km를 달렸다. 달리기를 소재로 한 유명한 코미디 영화 제목이 ‘맨발의’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신발조차도 필수품이 아니다. 사실 달리기의 핵심적인 준비물은 ‘달리겠다’라는 다짐 하나다. 마음가짐에 비하면 그 외의 것들은 중요성이 한참 떨어진다.
2.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달리기에 곁들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미뤄놓았던 공상들을 달리면서 해치울 수도 있다. 가끔은 오늘 어떤 글을 써볼까 하며, 머릿속으로 문장을 쓰기도 한다. 풍경을 구경하고, 하천변을 거니는 사람들의 패션을 평가한다. 이도저도 싫은 날이면, 바닥에 닿는 발의 리듬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3.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아무리 나태한 하루를 보냈을지라도, 5km 정도를 달린 후 땀에 흥건한 모습을 거울로 보고 있자면, 왠지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사실 나는 이 착각 때문에 달리기에 빠진 것 같다.
매일매일의 날씨가 다르고, 컨디션도 다르고, 떠오르는 공상들도 다르기에 각각의 5km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럼에도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곳을, 같은 페이스로 달리기에 쌓인 빅데이터로 보면, 나의 5km 달리기는 아래와 같은 평균으로 수렴한다.
* 스트레칭
전문적인 스트레칭을 배우거나, 유튜브 영상 하나를 찾아본 적이 없기에 ‘이러면 좋지 않을까’싶은 동작으로 몸 이곳저곳을 돌리고, 늘리고, 또 찢는다. 어쩌면 이 동작들은 어린 시절 약수터에서 본 어르신들의 몸놀림이 내 무의식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릎과 허벅지에 각각 한 번씩 부상을 입은 후로 스트레칭이 필요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달리기 전에는 항상 이렇게 몸을 풀어준다. (하지만, 정작 부상 예방에 좋은 스트레칭 방법을 찾아보거나 한 적은 없다.)
* 0km ~ 1km
괜히 나왔다.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후회가 든다. 종아리는 비명을 지르지만, 허벅지는 잠에서 덜 깨어 태연하다. 폐는 조금의 공기라도 더 빨아들이려듯 목 바로 아래까지 마중 나온 기분이다. 뉴턴의 물리법칙에 따르면, 멈춰있던 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을 필요로 한다.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앉고, 게으르게 누워있던 몸을 달리게 하려니 훨씬 더 큰 힘 — 고통이 뒤따른다. ‘스트레칭 방법을 좀 찾아볼 걸’하는 생각이 든다.
* 1km ~ 2km
조금씩 적응이 되기 시작한다. 다리도, 몸도, 호흡도 안정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풍경과 사람들도 눈에 들어온다. ‘러닝크루’라는 것이 유행이라더니, 삼삼오오 모여 함께 달리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의아하다. 나는 혼자서, 어느 누구와도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것이 달리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굳이 모여서 달리는 이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게들 같이 달리는 게 좋으면 군대라도 다시 가지 그래. 여럿이 함께 달리는 일은 지겹도록 할 수 있을 텐데.
* 2km ~ 3km
즐겁다. 몸이 익숙해지고, 피로는 아직 오지 않은 그 사이, 가장 최적의 구간이다. 두 발이 땅을 밀어내고, 팔이 공기를 가르는 리듬이 자연스럽다.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는 지경이다.
흑인음악의 오랜 팬인 나는 주로 bpm 100 전후의, 소위 ‘그루브 한’ 미드템포 음악을 좋아하지만, 달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사실, 달릴 때마다 걸그룹 노래를 듣는 것은, 남몰래 즐기고 있는 길티플레져이다. (나의 성격이나 취향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믿지 못하겠지.)
이 음악들의 템포와 내 다리의 리듬이 합을 맞춰 착착 움직인다. 킥에는 오른발, 스네어에는 왼발, 그리고 그 사이를 쪼개는 하이햇에 맞춰 양팔을 흔든다.
* 3km ~ 4km
반환점을 돈다. 지금까지는 집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뛰었지만, 지금부터는 ‘집을 향해 가는 방향’으로 달리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피로함이 느껴진다.
마치 출퇴근길 같다.
출근길, 피곤하지만 사무실 말고는 달리 갈 곳이 없다. 가끔 길이 막혀 출근길이 늘어지면 조금은 반가운 기운마저 든다. — 사무실로 들어가는 시간이 조금 더 늦어지고, 나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더 허락되는 것이니까. ‘길이 막힌다’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핑곗거리까지, 완벽하다.
반면, 어떤 하루를 보냈건 간에 퇴근길은 온몸이 무겁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지만, 내 몸과 집의 거리는 아직도 1시간 30분이다. (한참이 지난 것 같다.) 아직도 1시간 20분이다. (몇 십 분이나 지났을까?) 1시간 22분이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은 틀렸다. 시간이란 건 공간과 얽혀있는 것이 아니야, ‘어디를 향해가느냐’에 따라 그 속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원리로, 반환점을 돌고 방향만이 바뀌었을 뿐인데, 시간은 느려지고, 몸이 조금씩 무거워진다. (중력마저도 방향성에 지배된다는 논문을 구상해 본다)
* 4km ~ 4.999km
마지막 1킬로미터,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작’ 5km겠지만, 내게는 아직도 버겁다. 기억으로는 마지막 1킬로미터 구간에 굴다리가 2개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2개는 지나쳤고, 눈앞에는 3개가 넘게 보인다.
마지막 몇 백 미터 정도는 걸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고작 몇 백 미터 더 달리겠다고 무리를 했다가 다치면 그게 더 손해가 아닌가? 나의 달리기에는 관중도, 기록도, 결승선도 없다. 매일 5km를 달리라는 의사의 처방도 없는데 나는 무슨 명분으로 이 짓을 하고 있는가?
문득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고작 이 정도로 ‘달리기가 취미입니다’라는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을까? 혹은 ‘나는 매일 달린다’라고 글을 시작하게 된다면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
수많은 갈등과 혼란 속에서도 남은 거리는 착실하게 줄어든다.
* 5km — 도착.
스마트워치가 5km를 알림과 동시에 나는 가상의 피니시 라인을 가상의 세리머니와 함께 넘는다. (아무런 포즈도 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관성에 의해 몇 미터라도 더 나아갈 수 있겠지만, 나는 물리법칙을 과감히 거스르며 즉시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오늘의 할당량은 이미 채웠고, 마치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면 손해라는 듯이.
오늘도 끝이다.
집에 가서 달리기에 관한 짧은 글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