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다

Some gone, Some stay

by soormj
꿈이라는 건 과대평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혼란스러운 꿈을 꿨다. 나의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비현실적인 이야기와 행동을 했다. 과거의 사람이 현재에 있었고, 현재의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결과가 원인에 앞섰고,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었다. 모든 것이 논리이자 비논리였고, 현실적인 동시에 비현실적이었다. 정지된 장면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사건처럼 시간이 흐르기도 했다. 추억이기도, 소망이었고, 후회이기도 했던 이 꿈은 현실과 상상이 온통 뒤섞인 채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꿈속의 나는 (잠에서 깬 후 잠시동안까지도)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 모든 것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깨닫게 되었다.

그건 그냥 꿈일 뿐이었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이어진, 해석이 불가능한 장면들의 나열.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정만은 또렷이 남아있었다.


나 자신을 ‘유물론자’라고 칭하지는 않겠다.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엄마에게 자랐고, 지금도 ‘무신론자입니다’라고 하기에는 일말의 꺼림칙함이 드니까. 그래도 내 세상은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사주, 운세, 궁합, 해몽, 작명 같은 것은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정했고, 원리 없이 명제만 있는 사실은 믿지 않는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어떤 일들은 그거 그것이 ‘가능한 결말 중 하나이기에’ 일어난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붙이며 살아가는 타입도 아니다.


그런 내게 왜 꿈 따위가 이렇게 또렷한 감정을 새겼을까.


나는 소위 말하는 MBTI ’T’ 형 인간이다. 감정보다는 이해가 먼저다. 어떤 일에 대해 ‘화를 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YES라고 답하기 전까지는 화조차 내지 않는 편이다. 해명이나 설명이 완전하다면, 사과라는 건 생략해도 좋을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무작정의 칭찬보다는 정확한 피드백에 더 기뻐하는 나는 스스로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 여겨왔다. 하지만, 꿈속의 나의 논리와 이성은 무너져 내렸고, 그저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꿈에서 깬 나’에까지 침범해 왔다.


어쩌면 내가 자부하던 논리와 이성은, 감정을 나름대로 처리하기 위한 방어기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노를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서, 나는 그 이유를 찾는다.

그리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서, 그립지 않은 부분을 찾아낸다.

행복을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서, 그저 일상적인 감정으로 치부한다.


좋은 꿈을 꿨으니 복권을 사야 된다는 둥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꿈이라는 건 참 과대평가되어 있어’라고 냉소했던 나는, 간밤의 꿈으로부터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동안 꿈이라는 걸 너무 과소평가해 왔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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