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offense
술자리마다 정치 이야기를 늘어놓는 부장님이 있었다. 겉으로는 경청하며 동의하는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박 논리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서 가상의 토론회가 진행되는 것이다.
“여당이 어쩌고”
(나의 반박) 그건 인터넷 낭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팩트 체크는 해보셨나요?
“야당이 어쩌고”
(나의 반박) 모년 모월, 지금의 여당이 야당일 때도 똑같았습니다.
현실의 부장님의 일장 연설이 끝나면 술잔을 부딪혔고, 짠 소리는 가상 토론회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음이 되어 나는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내 머릿속에서는 나의 승리, 현실에서는 대화를 주도적으로(축구와 같이 점유율로 따지자면 거의 99%로) 이끈 부장님의 승리. 오늘도 정치적 중립성은 지켜졌다.
가끔, 도저히 그런 말들을 듣기 힘들 정도로 지칠 때면 아예 다른 생각을 해버린다. — 오늘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었지. 밑반찬으로 뭐가 나왔더라? 연근 조림은 아예 손을 대지 않았는데, 오이소박이였으면 좋았을 걸 — 내 육체는 ‘경청 모드’로 두되, 티 나지 않게 정신만 쏙 빼내어서는 다른 세계로 보내 자유롭게 유영시키는 기술 정도는, 중학교 수학시간 시절부터 수없이 단련해 온 나다. 이 정도쯤이야.
하지만 부장님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와는 다른 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자유롭게 의견을 내야 하는 회의석상이라거나, 상대방과 나의 위치가 어느 정도 대등하다고 판단이 되면, 논쟁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편이다. 그럴 때면, 링 위에 올라서는 상상을 한다. 주먹을 뻗고, 눈치 싸움을 하고, 가드 후 반격, 그리고 피니시. 가끔은 미묘하게 반칙까지 서슴지 않는다. — 내 의견을 밀어붙이다가도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강조할 부분은 여러 번 반복한다. 때로는 농담으로 슬쩍 주제를 틀어버리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대립, 논쟁, 토의, 토론 같은 것은 일종의 유희 같아서, 가끔은 생각이나 취향이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오히려 반갑다는 생각마저 든다.
또 하나, 상대방과 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침묵 또한 크게 어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침묵이야말로 내가 가장 지신 있어하는 것 중 하나이다. 말이 너무 많은 세상 속에서 나는 완전한 침묵의 공간을 꿈꾼다.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처럼 신의 힘을 잠시 위임받는다면, 나의 첫 번째 권능은 음성언어를 대체할 새로운 언어체계를 인류에게 선사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음악과 노래만큼은 허하노라, 너희의 자비로운 신으로부터) 흔히들 이상형으로 “키는.. 성격은.. 경제력은..”을 따지지만, 내게 이상형이란 ‘함께 침묵하는 시간마저 자연스러운’ 상대로, 내게는 대화만큼이나 침묵도 중요하다.
일방적인 정치론 설파, 논쟁, 어색한 침묵 같은 것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는 내가 사실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유머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과의 스몰토크이다. 재미없는 농담을 듣고 있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겨우 그 정도가 가장 큰 고통이란, 진짜 고통을 못 느껴봤구나.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꽤나 귀하게 자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재미없는 농담이 던져지고,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트리기라도 하는 상황은 최악 중 최악이다.(아니, 이게 대체 왜 웃기다는 거야?) 이윽고 농담을 이해 못 했다며 나를 향한 (비) 웃음이 후속으로 터져 나온다. 나는 신에게 기도한다. 오 신이시여, 저는 저 농담을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에게 무지의 축복을 허락해 주세요.
다음은 내가 최악으로 꼽는 농담 유형 중 일부이다.
너무나 일차원적인 농담 : 특정 단어의 어두나 어미에 단순히 X, 혹은 XXX, 때로는 XX 같은 상스러운 단어를 붙여서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농담. 우스꽝스럽지만 재미있지는 않다. ‘똥’이나 ‘방귀’ 같은 단어만 들어도 깔깔댄다는 유아 시절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맥락에 너무 충실하거나, 너무 크게 벗어난 농담 : 농담이란 ‘살짝’ 비트는 것이 묘미인데, 그 묘미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농담이다. ‘How are you?’라고 물었을 때, ‘파인땡큐앤유?’가 나오는 것은 너무 뻔하다. 혹은 그 대답으로 ‘You are fired’라는 말이 뜬금없이 나와도 재미없다. 그 목소리가 트럼프 목소리를 완전히 똑같이 흉내 낸다고 해도 말이다.
악의적인 농담 :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무시하기 위한 농담은 내용이 아무리 웃기다한들 웃을 수가 없다. 나도 가끔 짓궂은 농담이나 장난을 치고는 하지만, 사실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남몰래 측정하고 아주 미세하게 조준한 결과이며, 확신 없이 방아쇠를 당긴 적은 없다는 걸 변명하고 싶다. 만약 내 농담에 상처받은 적이 있다면, 그건 결코 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모욕이라기보다는 ‘농담치상’(弄談致傷)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재미없는 농담에 웃지 않을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이 농담에 웃지 않는다는 이유로 딱지를 떼거나 과태료가 날아오고, 형사가 들이닥치거나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부장님의 농담에 웃지 않기 위해서는 불법주차 이상의 각오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니까.
물론, 아주 주관적인 잣대로 내가 재미없다고 해서 당신이 특정 농담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아니다. 자유국가니까. 하지만 적어도 사전에 가벼운 경고 같은 것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농담은 무감각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특정 주제나 표현 등에 민감한 분들은 메스꺼움, 현실회피, 심각하면 절교와 같은 인간관계 단절을 유발할 수 있으니 청취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