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opening a door
해묵은 짐 정리 중 자물쇠가 하나 나왔다. 참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다. 어디에 쓰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최근 몇 년 간 잠그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나만이 열 수 있도록 잠그고 싶은 것들이 있었던 오랜 시절의 유산이라 생각하기로 하고, 그 출처를 밝혀내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괜히 열쇠를 돌려본다. 자물쇠의 구조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속에서 무엄가 묵직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 왠지 마음에 든다. '철컥'하고 풀릴 때는 묘한 쾌감이 든다. 내 안의 해묵은 감정이 하나 해소되는 기분이다. 다시 잠그고, 열쇠를 돌린다. 또 철컥. 몇 번이고 다시.
열쇠라는 게 참 오랜만의 물건이라 조금 낯설지만, 그래서 더 반갑다. 요즘이야 대부분 도어록이 설치된 데다가, 자동차도 리모컨 키니 버튼시동이니 첨단 기술이 탑재되어 있다. 심지어 키를 가진 상태로 문을 잡아당기면 자동으로 잠금이 풀린다. 버튼을 누를 필요조차 없다.
아마 대학시절 자취방 열쇠가 내게는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밤늦은 귀갓길, 열쇠를 잃어버려 친구집에서 신세 졌던 기억, 다음 날 열쇠집에 갔더니 대학생의 얇은 지갑사정에는 너무 비싸서 느꼈던 난처함도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하교해 보니 집에 아무도 없어, 비밀장소를 들춰보면 어김없이 열쇠가 놓여 있었던 기억도, 그리고 그때 안도의 한숨도 떠오른다. - 엄마가 열쇠 놓는 걸 잊지 않았구나 싶은 안도가 절반, 그리고 그 열쇠가 무사하구나 하는 안도가 나머지 절반.
요즘 도어록들은 심지어 물리버튼까지 없애고, 대신 터치스크린이 달려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 스크린을 훑다가, 문을 열 때면 또 다른 스크린을 훑는 것이다. 물론 최신 도어록이란 것들은, 자물쇠보다 훨씬 복잡한 기계적인 원리가 들어있겠지만, 오히려 덜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역설이다. 자세한 설명 대신 '마법적인 힘이 깃들었다'라고 대충 얼버무리는 영화 설정 같달까.
그래서 오히려 열쇠로 문을 연다는 것이 왠지 더 낭만적이다. 이 문을 열 수 있는 건 열쇠를 가진 나뿐이다. 나와 내 문은 그 정도로 특별한 관계이다. 나의 문은 '비밀번호를 안다'는 얄팍한 사실만으로 누구에게 열리지 않는다. 이 집의 등기상 주인도 열 수 없다. 문의 원리를 빠삭하게 꿰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 문을 열 수 있는 건, 열쇠라는 징표로 그 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나뿐이다. - 물론 열쇠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는 날엔, 그 자격을 잃고 한낱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징표를 항상 소중히 간직해야겠지만.
나와 문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다, 문이라는 글자에 '사람'이라는 글자를 넣어본다.
요즘의 인간관계란 도어록 같다.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타인의 일상을 공유받고(비밀번호만 알면 도어록을 열 수 있듯) 터치스크린 자판을 눌러대며 소통한다. 마치 도어록의 숫자를 스치듯, 그렇게. 편하고, 빠르고, 정확하고, 더 안전한 관계일지 모르겠지만, 왠지 낭만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과거의 인간관계란 물리적으로 함께 어울려야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또 하이파이브를 했다. (때로는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서로가 맞물려 돌아가며 관계라는 것이 이어져 나갔다.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물론, '문을 연다'라는 목적 아래에서는 그것이 열쇠든, 도어록이든 무엇이 중요하겠냐만은, 그럼에도 대(大) 도어록의 시대에 소중한 사람들은 열쇠 같은 관계로 남겨두고 싶다.
낭만이란, 여전히 그런 손맛에 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