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소파에서 떠나는 가장 먼 여행

리모컨 하나로 누비는 유럽의 골목

by soosays

거실 소파에서 떠나는 가장 먼 여행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요.
공짜로 떠나는 세계여행이라니.


나이가 지긋해 무릎이 예전 같지 않아도,
몸 이곳저곳이 아려와 비행기 좌석에 몸을 싣는 게 두려운 이들에게도
허락된 단 하나의 여행이 있습니다.


바로 TV 채널을 돌리다 멈춰 선 곳,
**EBS <세계테마기행>**입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유럽.
나는 어르신 곁에 나란히 앉아,


리모컨 하나로 국경을 넘습니다.
화면 속 낯선 이국의 여인이
능숙한 손길로 염소 젖을 짜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르신, 한마디 툭 던지십니다.


"아이고 어르신, 알라(아이)가 소젖을 저리 야물딱지게 짜네요."


"그렇게, 저래가 빠따(버터) 만드는갑네."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립니다.


구수한 사투리와 낯선 유럽의 풍경이
거실 한복판에서 묘하게 섞여듭니다.
그렇게 우리는 TV 속 바람을 따라
이름 모를 마을의 골목길을 걷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햇살을 머금은 와인잔,
그리고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


그 아름다운 잔상들은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통증마저 잠시 잊게 할 만큼 강렬합니다.
비록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떤 패키지여행보다

진한 여정입니다.


비행기 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무거운 캐리어 하나 끌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전 세계를 누빕니다.


이 작은 거실은, 지금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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