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세상을 떠나신 지 다섯 시간이 지났습니다.
가슴이 꽉 막혀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이대로 숨통이 끊어질 것 같아 억지로 자판 위에 손을 올립니다.
어르신이 계신 곳은 타지역이고, 남편은 하필 야간 출근을 나갔습니다.
어린 두 아이를 곁에 두고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밤길 운전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저는 지금 차가운 모니터 불빛 앞에 앉아 있습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기차를 타야겠지요.
이 복잡하게 엉킨 마음을 어떤 단어로 풀어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침표를 찍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지금 제 마음은 돌봐드리던 대상자의 임종을 맞이한 요양보호사의 마음이 아닙니다.
매일 같이 웃고, 함께 숨 가쁘게 운동하던 가장 친한 벗을 잃은 상실감입니다.
한국전쟁을 관통해 온 어르신과 밀레니엄 세대인 제가 '돌봄'이라는 가느다란 연결고리로 만나,
하루하루를 농담과 웃음으로 채웠던 그 시간은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어르신은 제게 늘 과분할 만큼 좋은 분이셨습니다.
서른 살 넘게 어린 제게 언제나 정중히 존댓말을 써주셨고,
'조 선생'이라 부르며 막내딸처럼 애틋하게 예뻐해 주셨지요.
제가 당신과의 일상을 글로 쓰는 것을 너그러이 허락해 주셨고,
제 글을 소리 내어 읽어드리면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지금 제가 쓰는 이 글을 어르신도 보고 계실까요?
어르신, 저 약속 지켰지요.
천국 가시는 그날까지 제가 꼭 곁에서 돌봐드리겠다고,
그 손 놓지 않겠다고 했던 그 약속... 저 진짜로 지켰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조 선생'으로 남을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그곳에선 숨이 가쁘지 않으신지요.
밤새 당신을 괴롭히던 날카로운 통증도 이제는 다 녹아 사라졌는지요.
너무 많이 보고 싶습니다. 내일 날이 밝자마자 달려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