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울 만큼 울었으니 이제 눈물이 마를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조의금 봉투 위에 내 이름 석 자를 적어 넣으려는데,
펜을 쥔 손이 덜덜 떨려 멈추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오다니.
기어코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장례식장 1호실 앞에 섰다.
커다랗게 박힌 어르신의 성함 석 자가 낯설게 다가왔다.
빈소 안으로 들어서자, 영정 사진 속 어르신이 생전의 그 인자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계셨다.
그 웃음이 너무나 생생해 나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아이고-! 우리 어르신 사진 참 잘 나오셨네! 엉엉.... 조 선생 왔심더....
보고 싶어 하시던 우리 알라들도 다 데리고 왔심더. 많이 기다리셨지예.... 엉엉!”
상주분들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유가족들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셨다.
칭찬에 인색하던 아버지가 조 선생 칭찬만큼은 마르지 않게 하셨다고.
그 모진 통증 속에서도 "조 선생 곧 온다"는 말 한마디면 아이처럼 피식 웃으셨다고.
그 말에 나는 다시 한번 목을 놓아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내 안의 모든 슬픔을 다 게워냈다.
겨우 식사 자리에 앉았지만 목구멍이 꽉 막혀 밥 한 술 넘기기가 힘들었다.
눈앞에 어르신이 숟가락을 들고 계실 것만 같아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상주분들을 한 분씩 마주했다.
그리고 어르신이 생전에 미처 전하지 못했던,
오직 나와 단둘이 있을 때만 조심스레 꺼내놓으셨던 진심들을 대신 배달해 드렸다.
첫째에겐 늘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서 미안했다는 마음을,
둘째에겐 자주 보고 싶었다는 그리움을,
셋째에겐 말수 적은 그 모습조차 좋았다는 신뢰를,
그리고 멀리 사는 넷째에겐 바쁘게 사는 게 대견하니 전화라도 자주 해달라던 간절함을.
어르신의 투박한 사투리에 담겼던 그 섬세한 사랑의 문장들을 하나하나 전하고 나니,
그제야 내 일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표현이 서툴러 가슴에만 묻어두셨던 그 말들이 자식들의 귀에 닿는 순간,
비로소 나의 긴 '인턴십 보고서'가 완성된 것 같았다.
후련했다. 그리고 실감이 났다. 다시 영정 사진 앞에 서서 늘 하던 퇴근 인사를 드렸다.
“어르신~ 저 감더.”
평소라면 “오야, 내일 또 온나” 하셨을 어르신께, 오늘은 조금 다른 인사를 건넸다.
“어르신 저 감더. 내일 또 오라 해도 이제 못 옴더. 알라들 잘 키울 텐께,
어르신도 이제 평안하이 가시소. 조 선생 이제 진짜 감더....”
빈소는 다시 한번 눈물바다가 되었고, 통곡의 벽 앞에서 나는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신기하게도 환청처럼 어르신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조 선생-! 잘 가라이-!”
그 다정한 배웅이 들리는 듯한 순간,
거짓말처럼 요동치던 내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나눈 인연이 얼마나 단단하고 아름다웠는지 확인받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