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허기를 채우는 맛, 어르신의 꽃게탕
남편 눈에도 내가 영 안쓰러워 보였는지,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며 선뜻 말을 건넸다.
겨울 추위에 취약한 작은 아이의 천식 때문에 행선지를 고민하다
김해의 박물관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남편은 근처에 유명한 꽃게탕 맛집이 있다며 나를 이끌려 했다.
하지만 '꽃게탕'이라는 단어가 귀에 닿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싫어.”
그건 거절이라기보다 통증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꽃게탕은 어르신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시던 음식이었으니까.
아무리 입맛이 없고 몸이 고되어도 꽃게탕 앞에서는
"이건 잘 들어간다" 하시며 마지막까지 숟가락을 놓지 않으셨던
그 모습이 선명했다.
그 붉은 국물을 마주할 용기가 내게는 아직 없었다.
그때 문득 상담 선생님의 조언이 머릿속을 스쳤다.
슬픔을 억지로 밀어내지 말고 천천히 애도하라고.
피하지 말고 생각나면 생각하고, 눈물이 나면 차라리 울라고.
슬픔에도 제각기의 속도가 필요한 법이라고 말이다.
망설이는 내 곁에서 큰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엄마! 나 꽃게탕 완전 좋아해요. 거기가요—!!”
아이의 해맑은 부름에 어쩔 수 없이 발길을 옮겼다.
그래, 한번 대면해 보자. 그렇게 도착한 김해의 어느 식당.
김이 모락모락 나는 꽃게탕 앞에서 혹여나 눈물부터 쏟아지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며 국물 한 술을 떴다.
그런데 웬걸, 너무 맛있는 것이다.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한동안 꽉 막혀있던 내 안의 무언가가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입맛이,
아니 살고자 하는 의욕이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어르신도 이 맛에 기대어 그 고단한 통증을 견디며 새 힘을 얻으셨던 거구나.
‘어르신, 저도 이거 먹고 새 힘낼게요.’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리며 밥 한 그릇을 비워냈다.
어르신이 사랑했던 맛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오늘의 애도였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잘 먹고,
어제보다 아주 조금 덜 아프게 어르신을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