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키우기 게임 리뷰
그거슨 어느 평일 점심,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하나의 사진으로 시작되었다. 앱스토어 1위를 하고 있다는 '거지 키우기' 게임. 앱 이름이나 앱 아이콘이나 딱 봐도 거지 같은데 이게 왜 1위를 하고 있는 거지.
게임을 다운 받은 후 열어보고 제일 먼저 느낀 건 그래픽이 엄청 후지다는 거. 설마 개발자가 그림까지 다 그린 건가 싶을 정도로 그래픽 수준이 형편없다. 그런데도 게임을 진행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조작 방식 자체가 단순하고 게임의 규칙이나 목표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어서였다. 거지가 돈을 구걸을 하며 계속 돈을 모으는데 탭을 한번 할 때마다 돈이 들어오고 알바를 고용하면 가만히 있어도 대신 돈을 벌어주고 부동산이나 기업 등을 사면 자산이 증식한다.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작법을 알게 되는 전개 방식이다. 학습법이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멍-하게 화면을 탭탭탭 하고 있게 된다.
이런 단순한 게임에 스토리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애니팡에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듯이. 근데 레벨을 올릴수록 이 거지의 사연이 하나씩 밝혀지는데 이 스토리가 기구하다.
구걸로 생계를 이어가던 아빠 거지를 어느 날 아들이 따라나선다. 구경이나 하려고 따라간 아들 거지는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만 돈을 가져다준다. 아들은 그날 아빠보다 더 많은 수입을 벌어 들인다. 아빠는 재능이 없다며 좌절하고 그 길로 아들을 떠난다. 혼자 남겨진 아들 거지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구걸 활동을 시작한다.
보는 사람마다 자꾸만 돈을 쥐어주고 이것밖에 못줘서 미안하다고 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자꾸만 거지에게 뭔가를 가져다주었다. 거지는 어느 정도 돈이 모인 후 알바를 하나둘씩 모집하며 그 알바들의 사연과 꿈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들어주는데 이들의 이야기도 흥미를 끈다.
보통 이런 배경 이야기 나오면 skip 누르고 빨리 게임이나 진행하자 하는데 이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거지의 마음에 동화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이런 병맛 게임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게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만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게임이었다. 기획자가 이런 걸 의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본주의 축소판.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다.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 내 스킬을 높이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결국에는 나를 대신해 돈을 벌어 올 알바를 많이 고용하고 알바들의 스킬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일하지 않고(=탭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온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부동산 투자, 미술품 투자, 기업 인수 등으로 자산을 증식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샌가 돈이 막 굴러 들어온다. 처음에 1원 단위로 시작했던 현금이 조 단위가 되고 자산도 가만히 있어도 가치가 꾸준히 올라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내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 노동자와 남의 노동력으로 돈을 버는 자본가가 있는데 노동만 해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 노동자가 열심히 벌어 봤자 결코 자본가를 이길 수 없다.
좋은 리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거지 사장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스스로도 구걸의 설득력이 높고 알바 스카웃도 잘한다.
알바는 싸게 데려와서 싸게 굴리는 게 다가 아니다. 거지 사장은 그들의 목소리에 계속 귀 기울여주고 좀 돈이 들어도 그들에게 계속 투자를 해서 스킬을 높여준다. 그리고 알바생들의 복지까지도 신경 써준다. 보여주기 식의 허황된 복지가 아니다. 알바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개개인이 원하는 정말 맞춤형의 복지를 제공한다. 가난한 피아니스트 알바생을 위해 ‘카네르기’ 콘서트홀을 사들이고 화가 거지를 위해 예술의 ‘쩐'당을 사들인다. 연주/전시하고 싶으면 언제든 하라고.
근데 이들의 스킬이 올라갈수록 그리고 행복도가 올라갈수록 그들의 업무효율은 높아지고 결국에는 사장이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거지 사장의 또 다른 매력은 무한한 긍정 에너지다. 사막에 떨어져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밝은 면을 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공수래공수거, 다 부질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게임의 궁극적인 깨달음은 이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거다. 열심히 돈 벌어 봤자 죽으면 가지고 갈 수 없듯이 게임에서 몇조 벌고 '카카옹' 기업을 인수해봤자 게임을 지우는 순간 다 의미 없는 노력이 되어 버린다. 돈을 열심히 번만큼 가족과의 가치 있는 시간이나 내가 좋아하는 즐거운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듯이 게임을 할 시간에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었을 거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초기화 버튼을 누르면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거지'라는 메시지가 뜬다. 기획자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이 게임의 가장 궁극적인 메시지가 이거 아닐까.
John, 나 슬퍼.
그래서 이 리뷰는 이 게임을 해보라는 걸까, 말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