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신러닝 시대에 UX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알파고 대 이세돌의 대결이 어제 막을 내렸다. 지난주부터 인공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처음 세 번의 패배에서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회의적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인간이 기계에 지배 당하고 현재 직업의 대부분이 기계로 대체된다는 비관론이 많았다. 이세돌의 첫 우승 이후로는 분위기가 전환되며 이세돌 미담과 인공지능의 희망적인 면도 많이 부각 되기 시작했다.
UX 업계는 어떨까. 인공 지능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고 인간이 하던 일 중 어떤 일들이 대체 가능할까.
UX 디자이너가 하는 많은 일들은 생각해보면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한 일들이다. 상위 기획이 어느 정도 나온 후에는 스토리보드/와이어프레임은 기계가 저절로 그려줄 수 있다. UX는 지금도 어느 정도 패턴이 있다. 메뉴 하나 만드려고 하면 pttrns.com 같은 사이트에서 카테고리에 따라 레퍼런스를 찾아본다. 구글 머터리얼 디자인의 가이드라인이나 iOS에서 기본 앱들의 패턴도 참고한다. 머신러닝이 발달하면 이런 패턴들과 기존에 존재하는 디지털 서비스들 다 학습한 후에 명령만 입력하면 화면을 다 뽑아줄 거 같다. 설계서 문서도 필요 없을 거고, 프로토타이핑도 알아서 다 만들어줄 수도 있다. UX 디자이너가 하는 대부분의 업무를 인공지능으로 더 정교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우리는 디지털의 최전방에 있기에 디지털의 발전으로 인공지능에 쉽게 대체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특성을 가장 잘 알기에 이 흐름을 누구보다 현명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에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머신러닝/딥러닝이 발달할수록 인공지능으로 없어질 태스크가 한가득이지만 새로 생길 태스크도 한가득이다. 머신러닝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기에서 의미 있는 사용자 경험을 도출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UX 디자이너가 인공지능에 빼앗기지 않을 영역이 어디일지, 그래서 어떤 능력을 계발하면 좋을지 좀 고민해 보았다. 작년에 쓴 UX 디자이너는 뭐하는 사람일까 라는 글에서 UX 디자이너가 하는 일 3가지에 맞추어 정리해 보았다.
1. 사용자에 대한 통찰력
UX 디자이너의 핵심은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선호하는, 불편하게 느끼는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고 최적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좋은 UX 디자이너는 사용자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하게 되면 사용자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은 더 쉽고 방대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데이터를 가지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의 몫이다.
2. 커뮤니케이션 능력
UX 디자이너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개발자, UI 디자이너, 경영자, 마케터 등 내부 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각자의 니즈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책을 찾는 일이다. 인공지능이 언젠가 따라올 수도 있겠지만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릴 영역 같다. 의사결정권자 중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 한 사람만 떠올려 보자. 그 사람의 말을 인공지능이 알아들으려면 멀었다는 점에 동의할 거다. 내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일,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 미묘한 의도를 파악하는 일, 말도 안 되는 의견을 설득해서 다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만드는 일, 모두가 만족할 안을 협의하는 일은 오랜 시간 숙련이 필요하다.
3.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획력
머신러닝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기회가 다양하다. 뉴스에서는 의료, 금융, 자율운행 등의 사례를 많이 언급하는데 업계가 다르다고 남 얘기가 아니다. 그런 기술이 나왔을 때 결국 사용자와의 터치포인트에서 만족스러운 경험을 만들어주기 위해 UX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기획력만 받쳐주면 숟가락 얹기 성공.
다른 업계까지 멀리 안 가고 각자 지금 맡고 있는 서비스에서도 머신러닝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충분히 고민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맛집 서비스를 기획하는 UX 디자이너라면, 사용자의 맛집 성향에 대한 빅데이터를 수집해서 머신러닝으로 패턴을 분석하고 최적의 맛집을 추천하는 기획을 낼 수 있다. 맛집 성향 분석이나 추천 알고리즘에 대한 복잡한 설계는 디자이너가 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무엇을 분석하고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은 기획력이 받쳐줘야 하고 사용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머신러닝 사례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례는 타겟Target(미국 대형마트)의 임신 여부 판별이다. 어느 날 고등학생인 딸에게 타겟에서 임신/육아 용품 쿠폰이 배달된걸 보고 그 아빠가 열 받아서 항의했던 사건이 있다. 근데 알고 보니 진짜 딸이 임신한 게 맞았다. 타겟에서는 임신에 영향을 주는 25가지 제품군을 기반으로 사용자들의 구매 패턴을 분석하여 임신을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무향 비누, 로션, 철분, 엽산 등 구매 습관이 바뀌면 임신 가능성이 높다. 남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타겟에서 먼저 임신을 알아채고 쿠폰을 보내서 타겟에서 쇼핑을 하도록 유도한다. 먼저 끌어들이면 추후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마케팅에 머신러닝을 활용한 사례다. 그 많은 데이터를 훑고 분석하는 건 기계의 몫이지만 사람의 기획력과 통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카테고리를 뽑고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임신한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지)는 결국 사람이 고민해야 할 몫이다.
솔직히 당장 우리의 업무는 변함이 없을 거다. 구글이 알파고 등 인공지능에 14년간 투자한 총액이 33조 원가량 된다고 한다. 오늘 바둑 이겼다고 해서 내일 당장 디자인 막 찍어내는 인공지능(알파디자인?)이 나올 거 같진 않다. 그렇지만 다들 대비는 하고 있으면 좋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업무만 하고 있다면 다가올 미래가 어두울 수 있다. 인공지능과 견주어 후지지 않을 우리만의 강점을 더 강화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달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왔을 때 정리되는 인원이 아닌 인공지능을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간 단순 노동을 하느라 허비한 시간을 더 의미 있는 곳에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