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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May 11. 2016

싸이메라 표절 맞네

뭘 베꼈다는 건지 궁금해서 써봄



싸이메라의 아날로그 필름 표절 논란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냉담했다. 사연이 참 기구하긴 하지만 표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 세상에 비슷한 필터가 얼마나 많은데 좀 억지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기업의 횡포'는 사람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분노하는 주제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들은 표절의 실체 없이 감정만 있었다.


그래서 싸이메라를 받아 보았다. 아날로그 필름은 이미 몇 개 받아둔 게 있었는데 비교해보고 싶었다. 대체 어떤 점이 전 국민을 분노하게 한 걸까.




필터 효과 비슷하다고 베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미지 프로세싱이나 기술적인 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이 세상에 비슷한 필터 효과가 너무 많다. 싸이메라 입장에서는 비슷한 거지 똑같은 건 아니라고 우길 거다. 막상 까 보면 설정값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SK컴즈 관계자는 "비슷한 류의 효과를 내는 필터들은 카메라앱 시장에 매우 많다"며 "독창적 창작의 인정범위가 모호해지는 시장상황이고 또 필터류는 간단한 설정으로 제작이 가능하므로 동업자 의식을 공유하며 케어하고 경쟁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앱스토어에 카메라 검색해보면 어마어마하게 많다. 내 폰에도 '사진' 폴더에 앱이 네 페이지는 된다. 그 네 페이지에 걸친 카메라 앱들의 필터 수만 해도 다 합치면 천 개는 넘을 거 같다. 그 사이에 서로 비슷한 필터 효과가 셀 수 없이 많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보정 방식이 따라 비슷한 필터가 쏟아진다.




도시 이름 비슷하게 한걸로도 베꼈다고 말하기 어렵다.


도시 이름 필터가 이미 너무 많다. 아날로그 필름 이전에도 이후에도 도시 시리즈의 필터는 많았다.



내 폰에만 해도 도시 이름의 필터가 몇 개 있다. 특히 파리는 꽤 흔한 주제다.




그렇지만 같은 도시에 같은 효과는 빼박 표절.


싸이메라 '프렌치'가 아날로그 '파리'와 효과가 달랐다면 논란이 없었을 수 있다. 파리에 대한 해석은 저마다 다르니까. 같은 효과에 이름을 다르게 했어도 어쩌면 조용했을지도 모른다. 근데 같은 키워드에 같은 효과를 쓰는 건 빼도 박도 못할 표절이다. '참고'를 넘어선 수준이다.


아날로그 필름의 가장 강력한 힘은 스토리텔링이다. 각 도시의 정서를 세련되게 해석하여 필터를 만들었다. 그 이야기와 해석에 공감을 받았다.


집 앞에서 대충 찍은 벚꽃 사진을 도쿄에서 찍었다고 상상하게 만드는 힘.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파리로 둔갑시키는 스토리텔링. 이런 경험에 사용자들은 반했고 기꺼이 유료로 필터를 구매했다.


싸이메라는 벤치마킹이라고 우기기엔 너무 베꼈다.





근데 억울하겠지만 법적 대응이나 보상은 어려울 거 같다. 법이나 특허에 대해 개뿔 모르는 나도 그 정도는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런 말 좀 조심스럽지만, 아날로그 필름 입장에서 이번 일이 아주 손해는 아닌 거 같다. 내가 기억하기로 아날로그 필름은 딱히 인상적인 마케팅이나 홍보를 한 적이 없다. 입소문만으로 앱스토어 유료 부문에 상위권을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었다. 근데 이번 논란이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퍼지며 아날로그 필름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갔고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노이즈 마케팅은 제대로 됐다.


대중에게는 세 가지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1) 그런 앱이 있었구나
2) 잘하나 보다
3) 도와주고 싶다


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렇게 몇 자 남겼다. 아날로그 필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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