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디 Mar 21. 2019

나는 트위터가 망한 줄 알았다

육아와 함께 시작한 트위터

아기를 낳은 후 육아 계정을 많이 팔로우한다. 아주 주관적인 경험으로 SNS 별 특징을 살펴보니,


인스타그램: 우래기 세상에서 젤 예뻐

페이스북: 정부의 보육정책은 쓰레기

유튜브: TMI TMI TMI

네이버블로그: 이 육아템으로 말할 것 같으면

네이버카페: 이럴 땐 어쩌죠

브런치: 육아란 무엇인가

트위터: 이게무슨일이냐너무힘들지않냐대박이다증말




인스타그램 필터로 예쁘게 편집된 일상


나의 주 SNS 채널은 원래 인스타그램이다. 임신/출산/육아를 하기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꾸준하게 일상을 그림으로 그려서 올렸다. 일상이 육아가 되었으니 이제 나의 인스타그램에는 육아 이야기뿐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나의 일상은 ‘인스타 필터’로 예쁜 이야기만 편집해두었다. 알콩달콩하게 아기를 키우고 잘 자라는 모습을 올린다. 내가 올리는 내용이 거짓이라는 건 아니다. 그게 내 일상의 전부가 아닐 뿐이다.



나의 불행을
인스타그램에 전시하고 싶지 않다.



인스타그램에 힘든 이야기도 물론 한다. 그러나 보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게, 심각하지 않은 선에서만 올린다. 피식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수준으로. ‘인스타 갬성’에 맞지 않으면 아예 올리지 않았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만 보면 내 육아는 꽤 할만하다. 제법 행복한 육아처럼 보인다.


그런데 예쁜 얘기만 하다 보면 지친다. 내 일상이 평화롭고 단조로울 때는 괜찮았는데 육아로 피범벅이 되니까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육아 인스타그램을 보면 내 일상이 쓰레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좋은 옷을 입혀야 할 것 같고, 우래기만 통잠 못 자는 거 같고, 발달과정은 제일 늦은 것 같고.




오랫동안 지켜온 내 철학을 깼다


트위터는 2009년에 계정을 만들고 몇 년을 재밌게 쓰다가 한동안 거의 안 썼다. 그러다 임신 중기쯤 우연한 계기로 임산부의 고충을 솔직하게 올리는 임신일기님의 트위터를 알게 되었고 너무 처절하게 공감했다. 그 후로 임신과 육아 관련 계정을 몇몇 팔로우하고 종종 들어가서 읽었다.


출산한 이후 잠깐 잊고 있었다. 그러다 인스타그램에 지쳤고 트위터의 적나라하고 날것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그 무렵 트위터에 육아 부계정을 만들었나 보다.


90년대 천리안 시절부터 온라인 활동을 시작했으니, 그 오랜 시간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을 많이 겪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온 나만의 SNS 철학이 있다.


나의 직장상사나 시어머니가 보면 안 될 내용은 SNS에 올리지 않는다. 모든 글은 전체 공개로 올린다. 실명으로 쓸 수 없는 이야기나 전체 공개를 하면 안 될 이야기는 애초에 올리지도 않는다. 아무리 친구 공개, 비공개, 익명이어도 모든 건 결국 밝혀지게 되어 있으니 남들이 알았을 때 문제가 될 이야기는 하지 말자.


지금 와서 보니 내가 인생이 덜 힘들어서 그런 다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육아를 하며 나는 오랫동안 지켜온 내 철학을 깼다. 익명의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하지 않는 이야기를 올리고 나의 모든 SNS 중에 가장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트위터에 올리는 날것의 이야기


트위터를 하면서 위안을 많이 얻는다. 다른 사람들의 힘든 이야기를 필터링 없이 많이 읽게 된다. 비슷한 일을 겪는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러니 나도 살아보자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의 힘든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올릴 수 있어서 좋다. 나의 고단함이 부끄럽지 않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진심 어린 위로가 달리면 강한 연대감을 느낀다.


트위터에는 행복한 이야기도 많이 올라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쁜 이야기를 올리는 인스타그램에 아기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기는 좀 민망하다. 감정과잉이 되면 왠지 좀 오글거린다. 약간은 건조하게, 이성을 잃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으로 쓴 텍스트가 인스타그램에 어울린다. 반면 트위터는 아기에 대한 사랑도 적나라하게 쓴다. 아기의 존재로 얼마나 행복한지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한 감정을 표현한다. 근데 그게 오글거리지 않는다. 그런 글에서도 위안을 많이 받는다. 그래, 맞아, 아기가 주는 행복감이 있지, 라는 공감을 하며.




아직도 트위터를 쓰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트위터가 망한 줄 알았다. 주변에 더 이상 쓰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트위터를 쓰다 보니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알겠다. 트위터를 쓰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익명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자신이 트위터를 한다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말한다고 해도 약간 수줍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계정을 알려주지 않는다. 나도 내 육아 부계정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누군가 SNS 하냐, 아이디가 뭐냐,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알려주게 된다. 나의 공적인 자아이며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이니까. 그래서 인스타그램은 주변 사람들이 다 쓰는 것처럼 느껴지고 트위터는 아무도 안 쓰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트위터 헤비유저가 되어보니 (아이폰 기준 스크린 타임 1위를 찍었다) 트위터만의 매력이 있다. 은근 유저층이 두텁고 다른 SNS와 구별되는 명확한 특징이 있다. 안 들리고 안 보이면 없는 줄 알았던 나의 좁은 시야를 급하게 반성.





TL;DR

인생이 고단하면 트위터에 익명 계정을 만들어 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