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D-7
5월 한 달간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 한 달간 머문다.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다음 주다.
아기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건 처음이라 들뜬다. 제주도와 인연이 많은 아기라 더 의미 있다. 제주도에서 생긴 아기였고, 아기가 생긴 후 태교여행도 제주도로 갔다. 아기가 가장 먼저 가는 여행지가 제주도라는 점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계속 꿈만 꾸다가 현실적인 문제들로 실천하지 못했다. 회사원이 한 달을 쉬는 건 쉽지 않으니까. 심지어 배우자도 회사원이면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한다. 그런데 최적의 타이밍이 찾아왔다. 나는 휴직 중이고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어 둘 다 시간이 유연하다. 엄마도 올해 안식년이라 동행하기로 했다. 아이를 돌볼 손이 하나라도 더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이렇게 타이밍이 완벽하기도 어렵겠다.
한 달 살기를 결심하고 숙소를 예약했던 시점에 아기는 3-4개월이었다. 이런 핏덩이를 데리고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근데 이제 8개월을 앞둔 아기를 보니 이 정도면 가도 되겠다. 아직 많이 어리지만 부서질듯한 시절은 어느 정도 지나갔다. 잘 앉아있고 식사 텀도 길어졌고 밤 수유도 안 한다. 나도 육아에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일단, 아기만을 위해 가는 건 아니고 나도 가고 싶어서 간다. 여행을 거의 일 년 만에 간다. 임신과 육아로 수고한 나에게 복직 전에 보상을 해주고 싶다.
아기는 몇 년이 지나면 기억 못 할 수 있지만, 그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좋아한다. 밖에 다니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곳에 가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탐색한다. 밖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아기는 내내 함박웃음이다. 그런 긍정적인 경험들이 모여 이 아이를 형성할 거라고 믿는다. 집 앞만 나가도 좋아하는 아기가 여행은 얼마나 더 좋아할까.
한참을 알아보고 고민하다가 내 로망을 실천할 수 있는 곳으로 결정했다. 제주도를 산다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딱 실현한 집을 발견했다. 현무암 돌담으로 둘러진 일층 독채. 집 뒤쪽에는 식물을 예쁘게 가꾸어둔 마당이 있고, 집 안에는 중정이 있다. 다른 대안도 있었지만 숙소는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임대업을 하는 곳이 아닌데 운 좋게 한 달을 빌릴 수 있었다. (앞으로는 지인에게도 렌트는 안 하신다는 걸 보니 내가 운이 좋긴 좋았다.)
얼마 전까지는 제주도 가는 게 꿈같았는데 실제로 갈 생각을 하니 이성적인 뇌가 깨어났다. 여행 같기도 하고 이사 같기도 하다. 아기 짐은 어느 선까지 가져갈 것인가, 그 큰 짐들을 어떻게 옮길 것인가, 차는 장기 렌트할까 가져갈까, 유아차는 빌릴까 들고 갈까, 이유식을 해먹일까 사 먹일까, 아기 침대는 어떻게 할까…
우리 차를 탁송을 하기로 얼마 전 결정하고 예약했다. 아기 때문에 짐이 많아지면서 차에 실어가는 게 유리했다. 이번 주 짐을 천천히 생각해보고 주말에 후다닥 싸서 차에 실어야 한다.
오늘은 공항 택시도 예약했다. 공항 가는 길은 평소라면 고민거리도 아니다. 근데 아기와 짐을 들고 내 차가 아닌 교통수단을 이용하려니 고민이 많았다. 일반 택시를 타자니 카시트가 없는 게 불안했고, 짐 한가득과 아기를 안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건 더 엄두가 안 났다. 이리저리 찾다가 벅시라는 서비스를 알게 되었고 공항 택시를 예약하면 카시트를 무료로 설치할 수 있어서 망설임 없이 예약했다.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편의성과 안전을 생각했을 때 우리에게 최적의 방안이다.
가는 게 맞나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가기 전까지 계속 이러겠지.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