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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Jul 15. 2019

임신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를 유난스럽게 떠들고 다니자.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서평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자리”라는 문구에 또 열이 난다.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니다. 나는 ‘오늘의 임산부를 배려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이전 글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트위터에서 임신일기님의 기록으로 임신 기간 동안 위로를 많이 받았다. 나와 임신기간이 비슷해서 공감이 됐고 나에겐 없던 증상이나 경험에 대해선 생각의 폭을 넓혀주었다. 그 임신일기 계정주 송해나 님이 책을 냈다.



소식을 듣자마자 샀고, 바로 읽었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진짜. 책에 나온 표현처럼 “앞으로 임신을 겪게 될지도 모르는 여성과 임신을 절대 겪을 일이 없기에 배려의 의무를 더 가지는 남성,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까지 모두가 충격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기


임산부 배려석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모욕, 한 인격이 아닌 아기 캐리어로서 받는 취급, 임신 중단의 결정권, 회사에서 받는 눈치와 소외감, 모성에 대한 강요와 비난, 공공재가 된 배, 의학적으로 밀려난 우선순위, 정책적인 구멍 등 임산부가 겪는 불편함을 아주 적나라하고 자세하게 쏟아낸다.


임산부가 이토록 날것의 불편함을 호소한 콘텐츠가 워낙 드물다. 기억에 남는 거라곤 네이버 웹툰 ‘아기 낳는 만화’ 정도. 그러다 보니 임신에 대한 사회의 인식 수준은 낮고,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입덧하다가 배 부르고 어느 날 아기를 낳는 정도. 임산부의 고통은 당연한 거고, 자세히 알고 싶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끝나는 것. 그 당연한 고통을 불평하면 모성의 잣대를 들이민다.


임부는 아기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는커녕 아직 아기 얼굴도 제대로 마주한 적 없다. 따라서 모성애가 모든 임부에게 항상 있을 수도 없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배가 커지면서 지인들에게 배 한번 만져봐도 되냐는 소리를 종종 듣고 있다. 이런 요상한 요청을 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해주고 있다. 당신에겐 ‘와 신기하다, 와 아기다’ 하는 느낌이겠지만 사실 내 입장에선 이건 그냥 내 배이고, 내가 당신 배를 만질 때 당신이 느낄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당신들이 고생하며 양육과 가사를 ‘돕고’ 있는 게 ‘원래는 아내 몫’이라는 저급한 인식만 드러날 뿐이다. 아내가 임신하고 고생하는 건 자연스러우면서 남편이 양육과 가사를 맡은 건 어쩜 그리 특별하고 숭고한지 모르겠다.
아기를 낳고 기르는 건 물론, 출산 전후로 달라지는 몸을 회복하는 비용까지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시스템을 수정하지는 않으면서 저출생을 ‘재난’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입법행정가들은 가임기 여성을 도대체 뭘로 보는 걸까.




임신을 확인했을 때

나는 “유난” 떨지 말자고

생각했다.


평소의 쿨한 나를 유지하고 일도 평소처럼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지나가는 고통이고, 나만 노력하면 원래의 나처럼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임산부의 고통을 몰랐고, 과소평가했고, 엄살이라고 치부했기 때문에 할 수 있던 오만한 생각이었다.


언젠가 SNS에서 본 글이 있다. 임신체험을 한답시고 허리에 무거운 거 두르는 건 임신의 고통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걸 두른 상태에서 항암제를 먹으면 인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너무 공감했다. 몸이 무겁고 허리가 아픈 건 임산부 고통의 극히 일부이기 때문이다. 내가 항암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분들의 고통은 정확히 모르지만 말하는 증상이 비슷하다고는 생각했다. 힘이 빠지고, 메스껍고, 계속 짜증나고, 감정은 요동치고.  


그런 상태에서 평소와 똑같이 생활하고 일도 야무지게 할 수 있다고 자신하다니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다. 회사에서 맨날 기운 없고 졸렸고 휴게실에 몰래 내려가서 조금씩 자고 왔다. 그래도 그나마 회사에서는 내 모든 에너지를 끌어올렸지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누워만 있었다. 나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 임신 과정에서 가장 싫었다. 감정이 요동쳐서 자주 울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진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그때의 고통을 너무 많이 까먹었다. 그래서 송해나 작가님의 이 기록이 더 의미 있게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이건 우리 모두의 기록이기도 하다.


4개월째 계속 힘들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더 싫어하는 것 같고, 나는 점점 더 혼자가 되는 것 같다. 왜 임신한 여성들이 혼자 끙끙대며 참거나 임신.출산 커뮤니티에서만 호소했는지 이제는 너무 잘 알겠다.
나는 넷플릭스로 TV쇼 보기를 좋아하고,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여행을 자주 다니고, 페미니스트이며, 전문직 여성인데 임신했다고 갑자기 내가 ‘임산부’로만 취급당하는 것도 낯설지만 대부분의 대화 주제가 ‘내 배 크기’라면 어리둥절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인데 임신 후 그만큼 역할을 못 해내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들고 출산과 육아 후 직무 지식이 백지가 될까 봐 두렵다.




물론 임신의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다.


송해나 작가님의 경험이 모든 임산부의 경험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나도 읽으며 폭풍 공감하는 부분과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교차했다. 모두가 다르기에 더 다양한 이야기가 불편하게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로 겁을 주며 임신과 출산을 멀리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출산의 선택도 비출산의 선택도 다 존중받아야 한다. 근데 임신이라는 선택을 한다면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확실하게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임신할 일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의 임신과 비출산에 대한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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