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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May 24. 2020

요즘 매일 일기를 쓴다.

오랜 시간 책장에 묵혀두었던 일기장을 한 달 전쯤 다시 꺼내 들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근데 그 날부터 나는 매일 자기 전 일기를 쓴다. 동기 없이 충동적으로 시작한 거라 하루 이틀 쓰다 말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꾸준히 이어간다.


포맷을 정해두니 쓰기가 수월해졌다. 이진재님이 브런치에 쓰는 '다섯' 시리즈 포맷을 보며,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괜찮은 포맷이군'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 어딘가 묻혀있다가 일기장을 다시 꺼내 든 순간 나도 모르게 그 포맷으로 쓰고 있었다. 다섯 가지 이야기를 넘버링하며, 간단하게 몇 줄 생각을 남겨둔다. 아주 단순한 방식이지만 부담 없이 쓰기에 좋았고, 상관관계없이 생각나는 대로 쓰기에 좋았고, 하나의 이야기만 고를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자기 전 하루를 돌아보았을 때까지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인상 깊은 일들을 적어두었다. 오늘의 고민거리, 만난 사람, 읽은 책이나 본 콘텐츠, 내일의 다짐 등. 그날그날 다섯 가지 이야기를 이야기당 세 문장에서 다섯 문장 정도 썼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글이 주는 자유로움이 있다. 내 감정을 검열 없이 좀 더 솔직하게 기록해둘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편한 글을 써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주며 글을 써왔는지 느껴졌다.


일상을 조금 더 소중하게 돌아보게 된다. 한동안 자기 전에 '오늘 진짜 한 거 없다'라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재택근무를 장기간 하고, 외출을 자제하고, 모임을 안 나가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서 일상이 멈춘 느낌이 들었다. 근데 일기를 쓰려고 하루를 돌아보면 작은 변화여도 내 일상에는 매일매일 다른 일들이 일어난다. 나는 매일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어제 한 달간 쓴 일기를 다시 훑어보며, 잘 보관된 내 하루하루가 고마웠다. 짧게 쓴 매일의 감상을 다시 꺼내보니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한 달 만에 읽어도 뿌듯한데, 1년을, 5년을, 10년을 한다면 어떨까. 도전해보고 싶다.


글감이 좀 쌓였다. 하루에 5개의 이야기를 쓰면 1주일이면 35개, 한 달이면 150개의 작은 이야기가 남는다. 물론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가치 없다. 내가 다시 읽어도 별거 아닌 시시콜콜한 잡담이다. 그래도 그중 가끔씩은 생각을 더 발전시키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긴다. 그러니 이렇게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기가 생각을 남겨두기엔 좋지만 그 자체로는 너무 거치니까.


그러고 보니 이 글이 올해 브런치에 남기는 첫 글이다. 올해는 나의 브런치를 어떻게 운영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약간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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