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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Oct 07. 2020

시각장애인은 앞이 어떻게 보일까

픽셀 나간 망막으로 보는 세상

글을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제가 시어머니와 원고를 주고받기 위한 목적으로 녹음했던 음성 파일을 첨부합니다.




시어머님이 시각장애인이라고 말하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중에 전맹은 드물며, 대부분은 약간의 잔존 시력이 남아있다. 시각 장애는 원인과 종류에 따라 앞이 어떻게, 얼마나 보이는지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앞이 어떻게 보이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처음에는 눈에 총알이 빵빵 뚫린 것처럼 몇 군데가 보이지 않았어. 시력 일부가 손상되고 있고, 그 손상된 부분은 안 보여. 글자를 크게 한다고 해도 안 보일 때가 있는 거야. 눈에 까만 점이 똑똑 찍혀있는데 그 부분은 시력이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티비에 픽셀이 몇 개 나간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맞아 그거야. 티비 브라운관이 망가진 것처럼 보여. 오래된 텔레비전을 보면 흐릿하고 물이 흘러내려가고 지글지글해 보이잖아. 그거야 그거. 몇 군데는 아예 안 보이고 몇 군데는 지글지글하게 보이거나 희끗희끗하게 보이고, 색 구분도 잘 안돼.


색 구분이 잘 안된다는 건, 빨간색이 덜 빨갛게 보이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색으로 보이는 건가요?

빨간색과 초록색이 같이 있을 때 구분을 못해. 똑같이 보여서. 아버님하고 둘이 봄에 꽃을 보러 가잖아, 그러면 이파리만 보이고 빨간 꽃이 안 보여 나는. 그래서 아버님이 꽃을 따서 주면 나는 만져보고, 내가 그게 빨간 꽃이다 라고 생각하고 보면 그게 빨간 꽃이 되는 거야.


총알 뚫린 것처럼 보인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그 총알 뚫린 면적이 점점 늘어나는 식으로 시력 손상이 진전되나요?

이제 깨진 것처럼 보여. 예전에는 총알 뚫린 쪽을 피해서 내가 옆으로 비켜서 보면 보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다 깨져서 실금이 난 것 같아.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전반적으로 해체가 되는 듯 해. 지금은 하얀 망사를 뒤집어쓰고 바깥세상을 보는 듯 하지. 중심 시야도 안 보이긴 하지만 터널 비전(시야가 터널처럼 좁게 보이는 증상)도 좀 있어.


이 증상은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건가요?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처음에는 어디 용하다는 의사들을 찾아가고, 몸에 좋다는 여러 보양식을 구하여 먹어 보기도 했지. 그리고 안수기도도 받아 보고 눈에 침도 맞아 봤지.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조금씩 도움이 되어서 지금까지 이렇게 볼 수 있는지도 몰라. 그렇지만 눈은 조금씩 조금씩 세월 따라 흐릿 해 지는 것 같아. '실명失明'이라는 말이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빛을 잃어버린다'는 뜻이잖아. 내가 이제 빛을 잃어가고 있어.

예전에 우리 아들이 스페인에 있었을 때 마드리드에 유명한 화가의 미술관에 갔어.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젊었을 때는 아주 섬세하게 그렸다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는 그림이 흐리멍덩 해졌어. 내가 그래. 예전에는 모든 것에 예민했는데, 이제는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거야. 나의 보호법이기도 하고.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 잘 넘어졌어. 야맹증도 있었어. 그리고 대학 졸업 후 회사 다닐 때도 눈이 너무 아파서 눈에 결막염도 있었어. 근데 안과를 가면 원인을 몰랐고 소프트렌즈 그만 끼라고만 했어. 나름 열심히 소독을 하고 렌즈를 꼈는데 염증도 잘 생겼어. 고된 사무일로 눈이 많이 힘들었지. 앞은 보였지만, 그런 것들이 전조증상이 아니었을까.


그런 전조들이 보이다가 점점 심해졌나요?

아주 얕은 물가에서 점점 깊은 물로 들어가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안 보였어. 옛날에도 앞이 이 정도로 잘 안보였나 생각해보면, 그때도 운전은 못했어.

미국에 살 때 의사 선생님이 운전면허를 따지 말라고 말씀하시더라고. 갑자기 돌발상황이 생기면 내가 그걸 못 볼 수도 있겠더라고. 내가 사고를 내면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설명할 거냐 물었을 때 할 말이 없었어. 그때도 어느 정도 안보였던 거야.


이건 다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기 전의 일들이죠?

그렇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기 전까지 병원을 가면 그냥 내가 예민하다는 취급만 받았어.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판정이 됐으니까.

내가 때로는 그때 판정을 안 받았으면 그걸 이기면서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 그때도 우리 애들 단어시험 같은 거 잘 못 봐줬어. 수학 문제 같은 것도 잘 못 봐줬어. 자기들이 알아서 공부했지 뭐.


망막색소변성증은 망막의 세포가 변성하거나 퇴화하여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질환이다.

초기 증상은 어두운 곳에서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운 야맹증이 대표적이다. 더 진행되면 좁은 터널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 같은 시야협착증과 사물의 형태가 찌그러져 보이는 등의 시력장애가 나타나다가 실명에 이른다.

질환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자 이상을 가장 큰 원인으로 본다. 가족력이 없어도 발병하기도 한다. 근본적인 치료 방법은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조기에 발견하여 병의 진행 속도를 최대한 늦출 수는 있다. 전 세계 4,000~5,000명 중 한 명 꼴로 나타나는 희귀 질환이다.


혹시 치료를 받으면 시력이 어느 정도 회복될 수도 있나요?

내가 눈이 더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가고 싶다고 하면 아버님은 그냥 웃어.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영어로는 GOK래. God Only Knows. 어떤 사람은 주사를 놓을 수도 있고 레이저 치료도 하잖아. 나는 이게 다 안돼. 치료방법이 없어.


첫째를 낳고 나서 비문증이 생겼다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 좀 더 말씀해주세요.

낳자마자 생겼어. 그 전에는 없었고. 애 낳고 잠들고 눈을 딱 떴는데 눈 앞에 뭐가 막 날아다니기 시작하더라고.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비문증이 생기기도 하거든. 50대나 60대쯤. 근데 나는 20대에 벌써 비문증이 시작됐어. 당시에 우리나라는 안과에 그런 개념이 없었어. 첫째를 낳고 나서 의사 선생님께 눈에 무슨 실 같은 게 날아다닌다고 그랬더니 그냥 물약 주면서 하루 더 자보래. 근데 물약을 넣고 며칠이 지나도 안 없어져. 그래서 종합병원을 갔는데, 그런 건 너무 신경 쓰면 정신병 생긴다고 없는 것처럼 하고 살라는 거야.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거야. 그렇구나 하고 말았지.

무시당한 기분이었겠어요. 그러면 그 후로는 비문증 때문에 병원 가신 적은 없었던 거죠?

그 후로는 없었어.


비문증은 그 후로 점점 심해졌어요?

지금도 계속 있지. 근데 눈에 대해 말해달라고 해서 의식하고 말하는 거지만, 나는 이게 그냥 일상이야. 굳이 의식을 안 하고 살아.


임신했을 때 검사하진 않았지만, 임신성 당뇨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하셨죠?

당뇨면 몸이 엄청 붓는다던데 나는 그렇진 않았어. 그냥 막달 되면 조금 붓는 정도. 근데 임신했을 때 세탁기에 팬티를 벗어놓으면 개미가 그렇게 내 팬티만 쏠아갔어.


그게 당뇨랑 상관있어요?

어, 당뇨는 당이 오줌으로 나오니까 개미가 맛있는 건 줄 알고 파먹은 거 같아. 우리 집에 개미가 없는데 내 팬티를 보면 이렇게 많이 쏠아 놓은 거야.


당뇨랑 눈이랑 관련이 있나요?

관련 있어. 당뇨로 눈이 멀기도 하고, 합병증으로 손 끝이 절어가고 뇌를 침범하면 경색이나 치매가 오기도 해. 나는 지금까지 검진했을 때는 당뇨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못 들었어. 근데 임신했을 때는 임신성 당뇨가 있던 것 같아. 그때 내 팬티를 생각하면... 무지하게 쏠았거든 막달쯤.


그러면 임신성 당뇨 때문에 출산하자마자 눈에 이상이 있었던 걸까요?

그렇게 추정해.


눈은 혹시 계속 안 좋아지다가 잠깐 좋아질 때도 있어요? 컨디션이 좀 좋거나.

어, 눈은 그런 게 있어. 기분이 좋으면 잘 보인다기보다는 내가 안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을 별로 안 하지.

근데 나는 어느 정도 단계가 넘어갔잖니. 그 전에는, 아주 나빠지기 전에는 컨디션이 좋으면 좀 더 잘 보였어. 지금은 그렇진 않아. 지금은 내가 마음으로 많이 포기했고.

그래도 요즘은 거울 보면서 내가 눈을 부릅뜨기 시작했어. 안 보이는 사람들이 눈이 다 처져있잖아. 좀 잘 보이고 싶어서 부릅뜨기 시작했어.


눈이 처져요?

처지지. 왜냐면 기능을 못하니까. 내가 사진을 찍으면 눈을 거의 감고 있잖아. 다른 식구들은 안 감는데 나 혼자 감고 있어.


눈에 근육이 약해지나 보네요.

이게 센서가 조절이 안된다고 해야 할까. 눈이 잘 안 보이면 근육이 바짝 긴장할 필요가 없잖아. 놀라면 눈이 이만-해지는 것처럼. 눈이 잘 안보이니까 눈 근육도 흐리멍덩 해지지.



시어머니는 미국 클리브랜드에 거주하던 중, 1992년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는다. 첫째 아이와 장난을 하다가 안경을 깨트려 시력검사를 받고 안경을 맞추러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방문했다. 근데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찰이 계속되었고 다음날 보호자와 함께 다시 병원을 오라고 하였고,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

의사는 터널 비전으로 시야가 좁아지다가 빠르면 3년 안에 실명이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어머님의 나이 36세,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둘째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어머님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점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바퀴벌레가 크고 징그럽다고 펄쩍 뛰며 질색을 할 때도 보지 못했다. 상대방이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지어도 다른 사람들의 안색을 살필 수가 없었다.

예전에 안과에서 불편한 점을 말했더니, 그럴 수도 있다고 오히려 불편해하는 자신에게 윽박질렀던 의사도 생각이 났다. 그러다 보니 불편한 것들을 모르는 척하며 살았고, 예민하게 굴지 말자고 스스로를 검열했다. 그래서인지 인생이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늘 힘들고 지쳤고, 억눌렸고, 감사하지 못했고, 슬펐고 힘겨웠었다.

눈이 나빠진 자신을 자각하는 것은 괴로웠다.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은 후 집 앞의 푸른 잔디와 나뭇잎, 그리고 아이들의 웃는 모습, 남편의 삐쩍 마른 모습, 이 모든 것을 이제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이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지 않았던 자신을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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