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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Oct 11. 2020

시각장애인의 일상은 어떻게 다를까

흐린 시야로 보내는 일상

글을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제가 시어머니와 원고를 주고받기 위한 목적으로 녹음했던 음성 파일을 첨부합니다.




시어머니는 앞은 잘 안 보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며 살아간다. 신호등의 빨간 불과 파란 불을 구분하지 못하여 다른 사람들이 건널 때 따라 건넌다. 버스를 탈 때 번호판은 보지 못하지만, 각 정류장에서 나오는 음성 서비스를 듣고 버스가 언제 올지 가늠한다. 장을 볼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어온다. 생각보다 품질이 안 좋거나 비싼 경우도 있지만 그러려니 하고 산다.



앞이 잘 안 보이면 일상에서 불편한 점이 많을 것 같아요. 평소에 생활하시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집에서는 괜찮아. 근데 밖을 나가면 힘들지. 길거리에서 넘어지고, 뭐 사러 가면 뭔지 모르고.


식당 같은 데에서 먹을 때에는 불편하지 않으세요?

음식이 나오면 뭔지를 몰라. 나는 사실 오늘도 식당에서 잡채를 입에 넣어봐야 잡채인지 알고 메밀국수도 먹어봐야 메밀국수인지 알았어. 그래서 불편하지. 내가 집에서 요리하면 뭘 만들었는지 기억하잖아. 맛과 상관없이 음식에 뭐가 들었는지도 알고. 근데 나가서는 사람들이 내 앞접시에 음식을 가져다주면 뭔지 모른 채 고마워하면서 먹어.


입에 뭐가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는 건 불안할 것 같아요. 혹시 못 먹는 음식은 없나요?

다행히 식성은 좋아. 아 근데 옛날에 그런 적은 있어. 아버님이 어떤 호텔에서 주례를 하는 날이었어. 거기에서 같이 밥을 먹었을 때, 내가 상에 올려진 음식 중에 뭘 먹으려고 하니까 남편이 나를 콱 쑤셔. 먹지 말라고 신호를 줬는데 내가 오기로 먹었다. 근데 뭔지 알아?


뭐였어요?

아주 센 홍어였어. 코 팍 쏘지 눈물 팍 나지 근데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먹었지.


쇼핑하거나 장도 직접 보시던데, 어떤 식으로 보세요? 장 보러 갈 때 혼자 다니는 건 괜찮으세요?

늘 가던 곳만 가. 동네에 30년 동안 가서 품질을 어느 정도 아는 곳. 노상이나 작은 슈퍼에서는 안 사지. 그건 내가 물건 품질을 못 보니까. 가격비교는 상상도 못 하고. 그런데 늘 가는 곳에서 사도 이상한 걸 들고 올 때가 있어.


어떤 거요?

세발나물을 사려고 했는데 어린 깻잎을 집어 온다든지... 원래 사려던 거랑 상관없이 잘못 가져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내가 장을 보는 방식이 갖고 싶은 거 그냥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계산대에서 카드 줘.


감으로 장을 보면 아는 것만 담게 될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건 어렵겠네요.

아버님이랑 같이 가면 물어보면서 새로운 걸 사 봐. 그런데 아버님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셔. 그래서 혼자서 쇼핑하고 싶을 때 아무거나 막 집어 오기도 해.


운전을 못해서 불편한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미국에 살 때 특히 불편했지. 차 없이 이동이 어려웠거든. 아이들 피아노 레슨, 미술, 도서관, 수영장을 대부분 엄마들이 데리고 다녔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바쁜 아빠 스케줄 사이사이 짬을 내어 다녀야 했어. 한 번은 남편이 바빠서 내가 아이들과 한번 걸어가 보려고 했는데, 차로 10분 거리를 걸어가려니까 40분 걸리더라고. 집 가까이 있던 슈퍼마켓도 걸어가려면 30분 이상 걸렸어.

가족끼리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다른 한인들과 어울릴 때나 아이들 학교에서 도우미를 할 때는 적극적으로 참여를 못해서 아쉬웠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밖에서 뭘 하기가 어려웠어.


대화할 때도 불편하실 것 같아요. 상대 표정이 잘 안 보여서.

그래서 말수를 줄이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지. 내가 옛날에는 말을 스스럼없이 너무 막 했어. 근데 이제는 내가 약자임을 확실히 깨달았어. 내 말이 무시당하거나 비웃음 당하는 걸 느낄 때도 많아.

교회에서 나랑 같이 일을 하게 됐다고 나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어. 나랑 같이 있으면 자기만 죽어라 일하게 될 것 같아서. 주변 분들이 도와줄 테니 같이 일 해보자는 제안을 많이 했는데, 사명인 줄 알고 다 했다가 그런 일이 벌어진 거지. 그래서 이건 진짜 아니다 생각하고 이제 다 거절해.


자주 다치시는 것 같아요. 최근에도 몇 번 다치셨잖아요. 다리도 부러지고.

앞을 제대로 못 봐서 넘어지고 많이 다치지. 손목도 다치고 발가락도 부러지고 코도 부러지고.

한 번은 내가 상담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너무 피곤해서 쉬고 있었어. 근데 전화가 왔어. 전화받으려고 일어나다가 급한 마음에 침대 방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떨어진 거야.

침대가 높잖아. 그래 가지고 코가 부러졌는데 코피가 주르륵 나더라고. 그래서 코피를 닦고서 시내버스를 타고 두정거장을 지나서 있는 병원으로 갔는데 간호사가 으악 깜짝 놀라고 난리가 났어. 원래 아는 선생님이었는데 그럴 사람이 아닌데 너무 놀라더라고. 알고 보니 내가 얼굴에 피범벅이 되어서 왔다는 거야. 선생님이 알코올로 얼굴을 막 닦아줬고.


일 년에 세네 번 정도 크게 다치시는 것 같아요.

어, 서너 번 정도. 이제 내가 다치면 어느 정도 다친 건지 바로 감이 와. 이번에 사위네 집 동네 언덕에서 넘어졌을 때도 아 이건 부러진 거다, 이건 빨리 병원 가야 한다, 딱 알았지.


많은 시설이나 공간이 잘 보이는 사람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넘어지는 경우도 더 많고 불편하실 것 같아요.

소위 멋있다 하는 곳에 가면 앞이 안 보여. 조명이 흐려서. 우리 집이 아닌 다른 곳이라 어색한 데다가 깜깜하기까지 하면 정말 힘들어.


계단이 많은 곳도 불편하실 거 같아요.

어 발 헛디딜 때도 많고..  불편하지.


영화, 책, 만화 등 다양한 창작물에서 시각장애인이 청각이나 촉각이나 뛰어나게 묘사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실제로 다른 감각이 더 발달하나요?

아버님하고 집에서 둘이 밥을 먹잖아? 우리 아파트 관리사무소 방송이 되게 조그맣게 나와. 근데 나는 벌떡 일어나서 거기 가서 듣고 있어. 

그리고 청소를 하면 내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잖아. 그러면 딱 이렇게 만져봐. 내 손이 눈 대신하는 거지.


그러면 눈이 좋았던 예전에 비해서 청각이나 촉각이 더 발달한 건가요?

더 좋아진 거 같진 않은데 그거를 의지하게 되니까 미세하게 잘 알아듣는 거 같지. 아버님은 자기는 나이가 들어서 귀가 잘 안 들린대. 같이 다니면 아버님 잘 못 알아들어서 내가 옆에서 통역을 해줘. 전화번호를 적으래. 주소를 적으래. 이러고.


서로의 시력과 청력을 도와주는 관계네요.

어 상부상조지. 아버님은 잘 못 알아들으셔. 보청기를 해야 되나 그러면 아 거기까진 아니래.


일반적으로 나이 들면서 다른 감각이 점점 퇴화하는데 어머님은 안 그럴 수 있겠네요.

어 안 그럴 수 있지. 


잘 안보이시는데도 요리를 계속 잘하시는 모습이 신기했는데, 다른 감각을 더 활용하시나 봐요.

요리는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니까 계속할 수 있지. 주위에 눈이 잘 보이는 다른 사람들은 밥을 하기 싫다, 아무 일도 하기 귀찮다,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셔. 근데 나는 그런 얘기를 정말 하고 싶지가 않아. 왜냐면 나 그런 것도 안 하면 정말 못 살 거 같거든. 사는 의미가 하나도 없을 거 같거든. 


요리가 어머님께 특별한 의미를 지니네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줄었잖아. 청소도 내가 거의 안 하지. 다림질도 남편이 하지. 나는 반찬 몇 개 짓는 거 말고는 하는 일이 별로 없잖아. 앞이 안 보이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요리 정도인데, 글쎄 그것도 내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이거라도 안 하면 삶의 의미가 없는 거 같아서 계속하고 있어.



신혼 초기에 시어머님이 해주시는 반찬이 항상 부담스러웠다. 많은 노동력이 들어가는 일인데 음식을 받을 때마다 마음의 빚이 쌓여갔다. 빈 반찬통을 무엇으로 채워 넣어야 할지도 늘 고민이었다. 그래서 어머님이 반찬 해줄 테니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하라고 하시면 괜찮다고, 집에서 밥 잘 안 먹는다고, 바쁘실 텐데 안 챙겨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임신을 했을 때 어머님은 또 음식을 보내고 싶어 하셨고, 나는 처음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딱 집어서 갈비찜이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나의 요청에 기쁘고 들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조금 어머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더 챙겨주고 표현하고 싶은데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해줄 수 있는 일에 제약이 컸다. 그래서 그나마 눈이 안 좋아도 하실 수 있는 요리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어머님에겐 반찬을 해주시는 게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는 일이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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