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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Oct 13. 2020

시각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혹시 내가 잘 몰라서 무례를 범하는 건 아닐까

글을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제가 시어머니와 원고를 주고받기 위한 목적으로 녹음했던 음성 파일을 첨부합니다.




시각장애인인 시어머니를 뵙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였다. 어떤 점이 달라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떤 배려가 필요한지, 또 어느 선이 과한 배려가 되어 오히려 불편한지 궁금했다. 내가 잘 몰라서 무례를 범할 수 있으니까.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불편하다고 들었어요.

캐나다에 놀러 갔을 때 보니까 장애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아주 자연스럽게 있더라. 공항에서 내려 화장실이 가고 싶었거든. 근데 내가 그때 다리 다쳐서 깁스도 하고 휠체어 타고 갔거든. 아버님이 나를 화장실 앞까지 데려다줬어. 근데 어디서 정말 천사 같은 여자가 나타났어. 그리고는 아버님한테 괜찮대, 자기가 해주겠대. 그리고 휠체어를 삭- 밀어 가지고 화장실 칸 앞에 내려다 주더라. 이용하고 나왔더니 손 씻는 곳에 데려다줬어. 거기서 내가 수도꼭지를 못 찾아서 더듬거렸거든. 그니까 자기가 촥- 틀어서 도와주고 마무리하고 아버님한테 딱 데려다줬어.


한국에서는 그런 경험 없었어요?

없지. 밀치기나 하지. 내가 SRT 수서역 화장실에 줄을 서잖아, 그러면 빨간불이 켜진 데를 들어가야 되나, 불이 꺼진 데를 들어가야 하나 한참 헤매. 사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힘껏 노려보고 있어야 돼.


아 화장실 들어갈 때 특히 불편하시겠어요. 아버님이 같이 못 들어가니까.

불편하지. 엄청 불편하지. 더듬더듬 힘들게 이용해.


어떻게 하면 편하게 쓸 수 있을까요?

일관된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어. 나 같은 사람은 그러면 그 시스템만 따라가면 되잖아. 그걸 정부차원에서 해주면 좋은데.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 같아. 이제 도로도 턱이 많이 없어졌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도 좋아졌고.

그리고 함께 어우러져서 사는 교육이 필요해. 우리나라는 아직 장애인에 대한 많은 이해가 필요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사는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그러면 어머님 기준으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상대가 어떻게 해주었을 때 편하다고 느끼나요?

나를 만나면 목소리로 인사를 해줬으면 좋겠어. 한마디만 해주면 잘 아는 사람은 목소리로 누군지 딱 알아듣고, 잘 모르는 사람은 와서 누군지 말로 해줘야 알지. 그런데 나를 보고 웃으며 인사하면 나에겐 아무도 없는 거야. 자기는 분명 나를 보며 인사를 했대. 어, 그랬구나.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 만났는데 모르는 체하고 지나간다고 뭐라고 하기도 해. 어떻게 저렇게 쌩 지나가냐면서.


그분들은 어머님이 잘 안 보인다는 걸 몰랐어요?

사람들이 내가 눈이 안 좋다고 하는 걸 잘 이해를 못해. 확대경을 이렇게 대고 보면 책이나 가까운 사물을 볼 수 있어. 사람들이나 저 멀리 사물은 확대경을 대고 보기 어렵잖아, 그러면 안보이거든. 그걸 잘 몰라. 확대경으로 책을 읽으면 아 책은 저렇게 읽나 보다 생각하지, 확대경을 대야만 다른 것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해.

그래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 뒤를 졸졸 쫓아오면서 아는 척을 안 하는 사람도 있어. 자기 알아봐 주나 안 알아봐 주나 그러고. 내가 교회에서 상당히 하는 일이 많았잖아. 사람들이 나한테 하소연하면 내가 보듬어주기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 주기도 하다 보니 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 근데 못 보고 지나가면 이제 꽁한 거지. 알아볼 때까지 쫓아오는 거지. 졸졸 쫓아와도 난 알 수가 없지.


그런 경우 어떻게 하세요?

난 알 수 없어. 인간관계 끊어지는 거야. 나는 도저히 더 못해.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했어. 근데 대접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있잖니. 자기를 알아봤으면 하는 사람들. 생각보다 성인 아이가 정말 많아.


함께 걷거나 이동할 때는 어떤 점을 알아두면 좋을까요?

내 손으로 상대의 팔꿈치를 잡는 게 편해. 상대의 손을 잡으면 손이 많이 움직여서 불편해. 위험하게 느껴져. 내가 가다가 넘어질 수도 있어. 팔꿈치는 안 움직이거든. 내 손으로 상대의 팔꿈치를 딱 붙잡으면 안정돼. 같이 가는 거 같아. 내 팔처럼 내 몸처럼, 같이 가주는. 그리고 가면서 설명을 좀 해주면 좋지.


어떤 설명이 필요하세요?

보는 것들을 설명해주면 좋지. 아버님이랑 그림을 보러 가면 아버님이 옆에서 다 설명을 해줘. 이건 이런 그림이야. 저건 저런 그림이야. 그러면 나는 형체만 보지만 같이 보는 것 같아.

아버님이랑 프랑스를 갔을 때 뮤지엄 패스를 끊었는데, 미술관이랑 박물관을 여러 개 자유롭게 갈 수 있잖아, 모네의 정원도 가고.. 그걸 다 갔어. 근데 그걸 다 다니면서 아버님이 설명을 다 해주는 거야. 그럼 나는 그 분위기를 느끼는 거지. 그러면 안 보여도 분위기를 느끼고 상상도 하면서 그게 굉장히 좋았더라 그렇게 남는 거지. 굉장히 골치 아프지 나랑 같이 다니는 사람은.


또 어떤 배려를 받으면 편하다고 느끼세요?

글쎄... 남이 이렇게 해주면 좋을 텐데 라고 바라는 건 별로 없어. 그 탱고 추는 영화 있지. 제목이 뭐더라..


아, 여인의 향기요?

어 그거, 딱 그거야 그거. 여인의 향기를 생각해보면 그 사람한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의 그 태도가 딱 나오는데 되게 슬프고 비참해 보였어. 갈수록 활동 반경이 줄어들고.

여인의 향기 주인공이 원래는 군인이었거든. 근데 나이가 들어서 시각장애인이 되고 마지막 장면에 그 젊은 마음으로 돌아가서 탱고 추잖아. 그거야 그거. 그 남자가 안 보이면서도 아주 정중하게 춤을 신청하고 탱고를 추잖아. 그 마음이야 그 마음. 내 마음은 정말 멋지게 살고 싶은 거야.


혹시 앞이 잘 안 보여서 소외당하거나 차별받았다고 느낀 적 있으세요?

누가 일부러 소외를 시키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중심에서 벗어나. 모든 일에서.

30대 때는 나 정말 비참했었어. 하고 싶은 게 많았어. 커리어를 포함하여 나를 지탱하던 많은 것들을 다 내려놔야 하잖아. 그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는데 정말 속을 안 들키려고 애를 쓰며 살았어. 근데 지금은 할 말은 해. 눈이 안 보이니까 읽어줘 라고 너스레도 떨고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 훨씬 편해.



어머님을 어떻게 도와주는 것이 좋을지 여러 방향으로 질문을 던졌으나, 의외로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위치에 놓이기 싫어하신다고 느꼈다.

장애인을 대할 때, 원치 않는 도움을 먼저 주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알아서 도와주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보고 도와 달라고 요청하지 않은 일은 함부로 돕지 않는다.

어머님이 인터뷰 중 말씀하셨던 내용과 우리 가족이 어머님을 대할 때 주의하는 내용을 몇 가지 정리해보았다.

인사할 때 -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며 인사한다.

이동할 때 - 동행인이 시각장애인의 반보 앞에 서고, 시각장애인이 동행인의 팔꿈치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 내려가는 계단인지, 올라가는 계단인지 설명한다. 그리고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을 알려준다. "여기부터 계단입니다. 여기가 마지막 계단입니다." 우리 남편의 경우 계단을 오르내릴 때 하나, 둘, 셋 하며 숫자를 센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올라가는 계단보다 내려가는 계단이 더 어렵다고 한다.

외식할 때 - 조도가 밝은 곳을 고른다. 그릇도 밝은 곳이 좋다. 무엇을 시킬지 물어볼 때는 메뉴판을 다 읽어준다. 메뉴가 나오면 설명해주고, 사이드 반찬도 같이 이야기해준다. 음식을 숟가락이나 앞접시에 덜어줄지는 미리 물어본다. 우리 남편의 경우, 뭘 드시고 싶은지 물어본 후 음식을 올려준다.

대화할 때 - 표정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말로 최대한 설명한다. 미소나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비언어적 리액션도 가급적 언어로 표현한다.

물건을 손에 전달할 때 - 한 손으로 시각장애인의 손목을 잡고 그 손 위에 물건을 올려준다.

공중 화장실에서 - 장애인 화장실 앞까지 안내해준다. 장애인 칸이 따로 없는 경우, 함께 줄을 서고 열리는 칸이 있으면 칸 앞까지 안내해준다. 칸에서 나오면 세면대로 안내하고 수도꼭지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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