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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Oct 28. 2020

아이패드로 유튜브 보는 60대 시각장애인

장애로 단절되었던 세상과 다시 연결하기

글을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제가 시어머니와 원고를 주고받기 위한 목적으로 녹음했던 음성 파일을 첨부합니다.




어머님은 어디를 가시든 확대경을 항상 들고 다닌다. 돋보기 같이 생긴 확대경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큰 배율로 사물을 보여준다. 고가의 보조기기지만 장애 판정을 받은 시각장애인은 그 비용이 일부 지원된다.

확대경으로 어머님은 가까운 사물들은 혼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패드와 아이폰 같은 스마트 기기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장애로 인해 단절되었던 세상과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확대경을 쓰기 전과 후 삶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책도 읽고 아이패드도 볼 수 있으니까 세상과 소통하는 것 같아서 자신감이 생겨.

내가 독서를 굉장히 좋아하잖아. 예전에는 한 달에 몇 권씩 읽다가 점점 읽기가 힘들어진 거야. 근데 확대경이 있어서 이제 몇 페이지씩 아주 느린 속도지만 책을 계속 볼 수 있게 되었어.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한테 들어오는 게 너무 좋거든.


요즘도 확대경으로 책을 읽으세요?

요즘은 눈이 더 나빠져서 직접 읽는 건 하루 두 장 정도. 재작년부터 우리 집에 와서 책을 읽어주는 학생이 있어. 사실 눈이 잘 보이는 사람도 책 한 줄도 안 읽는 사람들 많아. 근데 나는 지금도 계속 책 몇 권 쌓아두고서 조금씩 조금씩 읽거든. 자부심도 있고 즐거움도 대단해.

책 말고도 관리사무소 공지사항, 통신사 고지서 이런 것도 예전에는 하나도 안 보였는데, 이제 몇 자라도 어릿어릿하게 읽을 수 있어. 카드내역서 보면서 얼마 나왔구나 읽고. 그게 그래도 나한테는 세상하고 소통하는 방법이지.

눈이 안 보여서 끊겨 있던 정보가 다시 연결되었네요.

그치. 그치. 그리고 뭐 네이버 뉴스 같은 것도 그냥 텔레비전 보는 거랑 또 다른 맛이 있잖아. 눈 아파서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짧게라도 보고 있으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껴.

락스나 세제 사 와도 내가 아버님에게 늘 읽어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이건 부엌용인지 욕실용인지, 이건 후추인지 소금인지 내가 혼자 봐야 하는 것들도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확대경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큰 힘이 돼.


확대경이 처음에 쓸 때 어지러웠다고 하셨잖아요, 적응하는데 얼마나 걸리셨어요?

한 10년 헤맸던 것 같아. 귀찮고 무겁고 어지럽고 당장 집어던지고 싶을 때도 많았어.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잘 안 보이고 엄청 떨어뜨렸어. 전구도 나가고, 다 깨져서 테이프로 붙이고.


어지럽다는 게 초점이 안 맞는 안경을 쓰는 느낌인가요?

그렇게 보일 것 같아. 처음에는 멀미가 났었어. 오래 보기가 힘들고 책도 그래서 두 페이지 정도 읽는 거야.


확대경으로 볼 수 있는 게 딱 두 페이지 정도군요. 두 페이지 읽는데 얼마나 걸리세요?

1시간 정도. 확대경으로 최대 볼 수 있는 게 그 정도라고 보면 돼. 그런 다음 오후에는 피곤해서 지쳐서 누워있어.

그래도 한 자 한 자 천천히 책을 읽다 보니 작가와의 호흡이 느껴져. 머릿속에서 더 생각하게 되고. 눈으로 휘리릭 읽는 거랑 한 자 한 자 읽는 거랑 책 읽는 경험이 달라.


확대경으로 읽는 게 그렇게까지 힘든 줄 몰랐어요.

그치. 그래서 나도 의사 선생님께 힘들다고 불평을 했었어. 너무 보기 힘들다고. 그랬더니 선생님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 저시력으로 태어난 초등학생이 5배 확대경으로 공부하고, 어떤 사람은 이걸로 대학교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도 했다고 말씀해주셨어.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어.


아이패드는 언제부터 쓰셨죠?

우리 둘째 입사 첫 선물이니까 2012년?


아이패드를 잘 활용하셔서 당시에 깜짝 놀랐어요.

그때가 내가 계속 고집해서 2G 피처폰 쓰던 땐데, 우리 둘째가 너무 자랑스럽게 아이패드를 사서 보내줘서 처음에는 너무 한심했어.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보였어.


한심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그거를 쓸 수 없어서 한심한 거야. 나는 진짜 매일 한계에 부딪히고 있던 때였거든. 우리 둘째가 스마트폰은 엄마 못 쓸 거 같으니까 화면 큰 아이패드 사주면서 엄마 이거 갖고 놀으라고 했거든. 다른 사람들처럼 카톡도 하라면서 유튜브도 깔아주고 그랬거든.

내가 그때 5배 확대경을 겨우 적응하던 중이어서 확대경으로 카톡은 좀 봤고 다른 건 그림의 떡이었어. 그런데 아버님 해외 출장 따라가면서 혼자 기다리는 시간에 아이패드로 이것저것 써봤어. 자판을 써보려고 했는데 하얗고 아무것도 안 보여. 5배 확대경 써도 그래 가지고 그다음에는 음성인식으로 자판을 써봤지. 그걸로 편지도 보내고 카톡도 보내고 했어.


아 음성인식으로요?

어 검색도 음성인식으로 다해. 자판을 5배 확대경으로 보고 천천히 하나씩 치면 어느 세월에 문장을 쓰니. 처음에는 내가 말하는 게 잘 인식이 안되었는데 이제 내가 요령이 생겼어. 또박또박 몇 단어씩 끊어서 말하면 알아들어. 내가 이거 때문에 혀에 힘을 딱 주고 이야기해. 그러면 얘가 알아들어.


혹시 시리도 많이 쓰세요?

많이 쓰지. 아이패드로는 주로 알람 설정을 하고 몇 시인지 물어봐. 음식을 만들다가 20분 후에 꺼야지 생각하면 시리로 알람 설정해두고 음식 하면 아주 좋아. 아이폰으로는 '누구누구에게 전화해줘, ' '누구누구에게 메시지 보내줘' 이런 거 많이 해.


혹시 보이스오버 기능도 쓰세요? 아이폰에 화면에 있는 텍스트를 다 읽어주는 기능이 있더라구요.

아 그거, 카톡이나 메일이 오면 다 읽어주는 기능을 우리 둘째가 설정해줬어. 그래서 그걸 다 듣지. 뉴스 볼 때도 많이 써. 긴 거 위주로 듣고, 짧은 건 확대경으로 봐. 그리고 너무 긴 거는 얘가 잘 못 읽어가지고 내가 중간중간에 끊어서 서너 번 나누어 들어. 말하기 기능이 정-말 감사해. 그거 없으면 이거 못 써. 정말 편하게 쓸 수 있게 되어 있어.


처음에 어머님 아이폰 쓰신다고 할 때 괜찮으실지 걱정됐어요. 이전에 쓰시던 2G 폰은 자판이 있으니 손의 감각으로 쓸 수 있었는데, 아이폰은 터치 스크린이고 촉각으로는 버튼 간의 구분이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그게 전략이 있었어. 내가 처음에 2G 폰도 한 회사만 계속 썼어. 키패드 자판 순서 때문에. 그리고 그다음에 아이패드를 쓰면서 그거를 충분히 갖고 놀았잖아, 그래서 그다음에는 똑같은 시스템의 아이폰을 산 거야. 아이패드랑 똑같잖아.


그쵸. 인터페이스가 거의 똑같죠.

어. 똑같더라고. 아이패드에 익숙한 상태에서 아이폰은 금방 적응할 수 있었어.

그리고 2G 폰이 완전히 고장이 나서 더 이상 못 쓰는 상태였어. 핸드폰을 바꿔야 하는데 2G 폰으로는 여러 가지 기능을 못하잖아. 고민하다가 비싸지만 아이폰으로 질렀지.


2G 폰에서 아이폰 넘어가면서 처음에 불편하신 점 있었어요?

아이패드가 중간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하나도 안 불편했고, 오히려 시리를 불러서 뭐 “OO에게 전화해줘” 할 수 있으니까 2G 폰보다 더 편했지. 지금도 전화할 때 키패드를 누를 일이 없어.


그러면 2G 폰에 비해서 아이폰이 더 편하신가요?

그치. 아이폰이 더 편해.


스마트폰 쓰면서 잘 안 보여서 실수하신 적은 없어요?

어 실수한 적이 있었어. 계좌이체를 하는데 번호를 잘못 보냈어. 그래 갖고 은행에 전화해서 애걸복걸했어. 은행에서 자기네들이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잘못 보낸 사람이랑 통화가 돼 갖고 그 사람이 돈을 다시 집어넣어줬어.


감사한 일이네요.

어, 은행에서 뭐라고 그러냐면 요새 보이스피싱도 많아서 아무리 은행에서 얘기해도 끄떡도 안 한대. 자기네들이 얘기해볼 건데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그러더라고. 큰돈은 아니었어 5만 원이니까. 소액이라 돌려줬을 수도 있어. 그래도 정말 감사했지.


어머니 아이패드 쓰시고 페이스타임 많이 하시잖아요, 어떠세요?

내가 페이스타임을 하면서 이렇게 전화가 따뜻할 수가 있구나 생각이 들었어.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끼셨어요?

애들이 해외에 있을 때 전화비 많이 들었잖아, 멀리 있는 애들이 잘 지내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었는데 페이스타임으로 자주 연락할 수 있어서 좋았어. 그리고 페이스타임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맨 얼굴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끼리 할 수 있잖아. 그래서 더 그립고 좋지.

손주가 페이스타임으로 우리 보면 책 읽어달라고 책 갖다 들이대는 것도 귀엽고. 울산 병원에 있는 언니랑도 볼 수 있어서 좋고. 거리가 가까워지고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


어머님 페이스타임 할 때 잘 보이세요?

얼마나 잘 보이는지 보다는 그 분위기와 그 모습이 좋아. 아예 안 보이는 것보다는 약간이라도 보이는 게 낫잖아. 웃는 모습도 느껴지고, 책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하는 거 보면은 나도 걔처럼 헷갈리는 거야.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고.


어머니 아이패드로 유튜브도 많이 보시잖아요. 유튜브가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커졌지만 사실 어머님 처음 보시던 2012년 무렵에는 보는 사람만 보던 서비스였잖아요.

우리 둘째가 유튜브를 깔아줬는데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았지. 좋은 강의도 많고. 볼 게 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어떤 콘텐츠 주로 보셨어요?

철학, 신학, 내가 관심 있는 강의 들었어. 너무 새롭잖니. 일본 콘텐츠도 많이 들어. 특히 요리하는 거. 전 세계가 통하는 느낌이야. 어느 대학에 유명한 교수님의 강연도 듣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구나 막 그랬어.


어떻게 보면 어머님의 행동의 제약을 해소할 수 있었네요.

어, 내가 어디 다니면서 배우긴 어려우니까. 혼자 가기 골치 아프고. 유튜브로 영어 회화, 일어 회화랑 중국어도 조금 만지작 거렸어. 물론 우리 둘째는 내가 일본어 하는 거 보고 어디 가서 일본어 한다고 하지 말라고 하지만.


유튜브를 또 어떻게 활용하셨어요?

내가 미혼모 학교에서 영어 가르칠 때 영어 팝송 애들하고 같이 부르면서 영어 가르쳤거든. 유튜브가 딱이었지.

노래 듣는 것도 좋아하고,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작품 오디오북으로 듣는 것도 정말 좋아해. 화면을 보기보다는 주로 듣지만. 요즘 코로나 상황에서 유튜브로 예배드리고 노래 듣고 오디오북 들으면서 거의 하루 종일을 보낸 것 같아.


궁금한 거 생기면 검색하는 용도로도 많이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어, 이번에 내가 허리 아팠잖아. 유튜브에서 “허리가 아픕니다” 이렇게 찾아. 병원을 하루만 가고 물리 치료사들 올린 영상 보면서 열심히 운동했는데 거의 다 나았어.

요리도 많이 검색해보고. 내가 그동안 요리를 순 엉터리로 만들었더라고. 너무 신기하고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돼.



장애인과 고령자 등 IT 취약계층을 포함하여 누구든 개별 웹 사이트에 접근하기 쉽도록 기술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웹 접근성(Web Accessibility)이라고 부른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청각 정보를 함께 제공하고, 청각장애인을 위해 자막 등의 시각 정보를 함께 제공하고, 색약자를 위해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색상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규정이 있다. 국내의 경우 2015년까지 모든 인터넷 사이트에서 웹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규정하였다.

나는 IT 업계에서 오랜 기간 커리어를 쌓으며, 접근성의 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여러 귀찮은 규제 중 하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 기능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잘 쓰는 사람이 있었는데.

기술이 발전할수록 정보에 소외되는 사람은 그 격차가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다. 조금만 신경 쓰면 더 많은 사람들이 IT의 혜택을 누리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데, 그걸 귀찮은 규제 취급했던 나를 잠시 반성했다.

일을 하다 보면 사용자를 그저 데이터로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모두 개별의 인격이라는 걸 매 순간 기억해야 한다. IT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신체적인 한계로 정보의 접근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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