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디 Oct 31. 2020

상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글을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제가 시어머니와 원고를 주고받기 위한 목적으로 녹음했던 음성 파일을 첨부합니다.




학생 상담을 오랫동안 하셨죠? 몇 년 정도 하신 거예요?

우리 첫째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했으니까 22년 정도 했네.


진짜 오래 하셨네요.

어 그것도 발 부러져서 그만했어.  


상담가로서 어머님만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 강점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할만한 건 없어. 사람들 만날 때마다 굉장히 조심스러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상처가 뭔지 겉으로는 안보이잖니. 아주 조심스럽게 더듬거리며 찾는 거야.


상담은 마음을 여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아요. 어머님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세요?

처음에 상담 와서 말을 안 하는 학생들이 있어. 그러면 내가 여기 왜 왔는지 한참 이야기해. 그리고 목표를 같이 세워. 말을 워낙 안 하는 학생이면 종이를 줘서 써보라고 해. 무슨 고민이 있어서 왔는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그러면 많은 학생들이 글자도 잘 못쓰고 몇 줄 못 써.

그래도 보면 목표가 있어. 그러면 내가 너랑 앞으로 8번 만날 때 이걸 하겠다, 처음에 그렇게 약속을 하고 그러고 헤어져. 다음에 또 가면 또 말을 안 해. 그러면 종이에다가 자기소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단어를 줘. 그러면서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해. 그리고 그 자리에서 먹진 않지만 맛있는 초콜릿 같은 거를 '이거 갖고 가서 먹어' 하면서 줘. 그렇게 몇 번 하면 혀가 뻣뻣하던 아이들이 마음이 풀어지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


마음을 열기 시작할 때 되게 감동적일 것 같아요.

어, 그래서 선생님이 “걔가 말을 했다고요?” 막 이래. 그러면 있지, 그때부터는 좋은 시를 같이 읽어. 가족이 있어도 보살핌을 받은 적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사람들이 없는 아이들이 많이 와. 시를 같이 읽으면서 아이들 마음이 열리는 걸 경험했어.


시를 같이 읽어요?

어, 학생에게 읽으라고 그래. 자신이 직접 읽으면서 마음에 화학작용이 불기 시작하는 거야.


시가 마음을 여는 데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나요?

자세한 상담 내용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부모와 갈등이 있던 학생과 함께 류시화의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이라는 시를 함께 읽었어. 얘가 이걸 보는 순간 엄청 울더라고. 시가 압축된 언어로 표현된 문학이다 보니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고 자신의 상황에 이입하기 좋은 것 같아. 그러고 나서 내가 숙제를 줬어. 엄마에게 보여줘도 되고 안 보여줘도 되는데, 엄마한테 편지를 써보라고. 편지를 썼어. 나한테 보여주고 엄마한테 몰래 주고 왔대. 잘 마무리되었지.


말을 안 하는 학생에게 종이에 글을 쓰게 하고, 엄마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것도 그렇고, 글을 쓰는 것도 상담에 도움이 되나 봐요.

글을 쓰면 자기 생각이 명료해져. 이걸 왜 적었는지 그 이유를 묻다 보면, 말을 하기 싫어하는 애들은 한 두 마디 하고 끝나지만 결국 자기 말을 하게 되어 있거든. 글쓰기로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


상담 가시는 거 말고도, 일상생활에서 어머님께 마음을 열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굉장히 허풍을 많이 떠는 사람이 있었어. 굉장히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지. 근데 나한테 오면 자기가 못 그러는가 봐. 정직하게 행동을 했어. 힘들고 어려운 얘기도 하고. 이 사람하고 나랑 손 붙잡고 돌아다니면 마음이 녹았어. 자기 속의 마음을 보여주고. 희한한 관계가 있었어.


또 그런 경우 있었어요?

비슷한 경우 몇 번 있었어. 사람들이 나한테 거짓말을 잘 못하는 것 같아. 내가 영어를 가르쳐서 대학을 들어간 학생이 있어. 근데 걔가 얼마 전에 넘어져서 이가 다 나갔대. 그래서 걱정이 되어서 가보자고 했거든. 너는 이가 왜 나갔는데 물었더니 넘어졌어요 이러더라고. 진짜 왜 넘어졌는데 했더니 나를 이렇게 딱 보더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지. 술을 마셨어요, 그러더라고. 내가 앞이 잘 안보이니까 걔랑 손을 잡거나 팔을 잡고 다녀. 손을 잡고 다니면 거짓말을 못하는 거야.


사람들이 왜 어머님께 마음을 잘 열까요?

내가 좀 만만해서가 아닐까 싶어. 사람들 말하는 거 잘 속아주고 잘 들어줘. 진심으로 여겨주려고 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뒤치다꺼리도 은근 많이 하고, 먹을 것도 주고, 여러 방면으로 후원도 해주고.

그리고 나는 하기 싫은 말은 안 해. 사람들이 잘 보이려고 하잖아. 나는 그걸 할 줄 몰라. 잘 안보이니까 거짓말도 하기도 그렇고. 그러니까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그런 거 같아. 그래서 상담할 때도 애들이 내 앞에서 잘 울었어. 난 잘 몰랐지 왜 그런가.




어머님은 미국에 거주하다가 1992년 한국으로 가족과 함께 돌아왔을 때, 자식들의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몇몇 친구들의 권유로 이듬해부터 청소년 상담소에서 진행하던 자기 성장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영어, 수학을 지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기대와 달리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동안 외면해 오던 미련, 나약함, 불편한 가족사 등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며 그에 미치지 못했을 때 괴롭히던 모습, 사랑받지 못하고 외로움 속에 갇혀 지내던 자신의 모습을 역력히 깨닫게 되었다.

이 상담소에서의 프로그램을 진행할수록 불안정한 자아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져 피하고 싶었다. 몇 단계를 거쳐 상담교사 자격증을 받는 과정에 이르렀을 때 한 강좌를 앞두고 중단했다. 어머님은 더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상담 선생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후, 첫째 아들이 중학교를 입학하던 무렵 담임 선생님의 제의로 어머님은 학교 대표 학생상담 자원봉사자 훈련을 받게 되었다. 말이 제의였지, 당시에는 담임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비자발적으로 시작되었던 상담 훈련이었지만, 어머님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이후로 20년 넘게 계속했다.

어머님은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시고, 눈도 잘 안 보이고, 모든 것을 '마음속 양탄자 밑에 꽁꽁 숨기며' 살면서 스스로를 가장 비참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학생들을 상담하며 어머님은 자신의 마음속 상처들도 직면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많이 울었다. 상담을 하러 가면서 어머님 본인도 치유를 받았다고 말한다.


이전 06화 아이패드로 유튜브 보는 60대 시각장애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