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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디 Oct 04. 2020

시어머니는 시각장애인

인터뷰의 시작

글을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제가 시어머니와 원고를 주고받기 위한 목적으로 녹음했던 음성 파일을 첨부합니다.




문선숙. 나의 시어머니는 시각장애인이다. 시어머니는 앞이 거의 안 보이시지만 보통은 잘 눈치채지 못한다. 어머님은 남들 앞에서 안 보인다는 말씀을 안 하신다. 다른 사람들처럼, 잘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신다.


내가 어머님을 처음 만났던 9년 전에는 나도 긴가민가 했다. 사전에 남편(당시 남자 친구)에게 어머님의 시각장애를 들었기 때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만나고 보니 남들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려웠다. 밥도 잘 드시고, 눈을 마주치며 대화했다. 아버님과 손을 꼭 붙잡고 걷는 모습을 보면서도 걷기 어려우신가 라는 생각보다 두 분이 다정해 보인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당시 어머님은 마음먹으면 잘 보이는 사람처럼 행동하실 수 있었다.

근데 요즘은 어머님의 눈이 많이 손상되었다. 이제 다른 사람들을 속이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잘 안 보인다는 말을 예전보다 자주 하신다. 그건 뭐야? 이건 무슨 색이야? 여기에 든 건 무슨 음식이야? 아기가 지금 들고 있는 건 뭐야? 그리고 예전보다 도움의 손길도 머쓱함 없이 요청하신다. 자신의 장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신 걸까. 자신을 지탱해온 자존심을 내려놓는 과정을 문득문득 느꼈다.


어머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두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가족 중 누구보다도 어머님의 뜻을 지지했다. 어머님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가치 있는 콘텐츠라 믿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드리며 응원의 뜻을 전했다.


몇 달 뒤, 어머님은 자신의 글을 내가 한번 봐줬으면 좋겠다며 초고를 보내셨다. 3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회고록을 읽으며 어머님에 대해 많은 걸 배웠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고 항상 눈이 없어질 정도로 밝게 웃는 분. 근데 그 뒤에 숨겨진 상처가 깊었다. 내가 10년 가까이 보았던 모습은 그냥 내가 보고 싶은 대로 편하게 해석한 껍데기였다.


그렇지만 마음을 울리는 소재와 내용에 비해 구성이 아쉬웠다. 포항에서 태어난 시점부터 시간의 순서대로 팩트만 나열되었고 이야기로 엮이지 못했다. 상황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님은 직접 타이핑을 하기 어려워서 사인펜으로 종이에 큼직하게 글을 써두시면, 타이핑을 도와주시는 분이 따로 계셨다. 그러다 보니 써둔 글을 다시 읽거나 정정하기는 어려웠다.


글은 여러 차례 다시 읽어보며 퇴고를 거쳐야 점점 완성된다. 이리저리 순서도 바꾸어보고, 문장도 더 덧붙이고 줄이고, 단어도 신중하게 골라야 점점 읽을만한 상태가 된다. 근데 내가 받은 초고는 요리가 되지 않은 날 것의 식재료 상태였다. 정말 귀한 식재료인데 요리사는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팩트를 이야기로 엮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 같았다. 나는 평소에 브런치에 글을 썼고, 출간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고민하다 어머님께 인터뷰의 형식을 제안했다. 어머님이 써두신 초고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궁금해할 이야기부터 먼저 꺼내는 순서로 구성을 바꾸면 어떻겠냐고. 어머님이 써두신 글 속에서 더 깊이 들여다볼 부분들에 질문을 던지다 보면 또 좋은 생각들이 떠오를 거라고. 어머님은 고마워하셨고, 이제 내가 그 남은 이야기를 엮어가려고 한다.


어머님이 시력장애로 힘들었겠다는 짐작은 오래전부터 했으나 사실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설정해둔 '적당한 거리'에서 더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떠나 어머님의 삶에 관심이 생겼다. 한 명의 여성으로, 지식인으로, 선배 육아인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 이 인터뷰를 계기로 이전과 다른 관계가 또 형성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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