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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신 Aug 20. 2018

모방과 표절의 뿌리: '나도'와 '나는'

모방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변을 모방하면서 자라거든요. 말도, 관습도, 행동도 부모나 어른들을  보고 따라 하면서 성장합니다.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들의 발음을 따라 하면서 영어도 배우고 동작을 따라 하면서 무용을 익힙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은 자연의 모든 것들을 보고 따라 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릴 때, 또는 익숙하지 않을 때 따라 하기를 거부한다면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불가능할 겁니다. 아직 제대로 발음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엄마 아빠의 말을 따라 하면 부모들은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다가 그 발음이 점점 더 비슷해질수록 더 좋아합니다. 즉 모방을 하려고 하고, 또 아주 가깝게 하면 기뻐하는 거지요. 영화 Home alone에서 처럼 아빠 스킨을 발랐다가 따가워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또 예쁜 립스틱을 몰래 발랐다가 엄마에게 들켜서 혼이 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크는 거지요. 다들 이해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어리지도 않고 충분히 익숙해졌는데도 계속 다른 사람을 따라 한다면 이건 전혀 다릅니다. 성장이 멈춘 거라고도 볼 수 있고, 또 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용변을 가릴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 기저귀를 차고 돌아다니는 꼴입니다. 비정상적인 거지요. 


전문가가 되었는데도 남이 하는 것이나 일을 따라 하면 정상적이지 않은 것을 넘어서 부도덕한 단계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왜 전문가 집단인 기업들과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디자이너들이 모방을 하게 될까요. 


Range Rover Evoque (위)와 표절인 중국의 Land Wind


기업들이야 워낙 이윤의 창출을 위해서는 뭐든 하는 그런 존재이므로 모방도 거리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도덕성이 있는 기업이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자신의 모토를 'Don't be evil', 즉 '악하게 되지 말자'라고 해 놓기까지 한 구글도 늘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보면 이윤을 위해서라면 영혼까지도 파는 기업의 근본 생태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인 디자이너들은 왜 모방을 하게 되는 걸까요. 


1. 본의 아니게 표절


일반적인 이유로는 디자인을 배우는 과정에 보고 따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는 것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수업의 모습이 인스트럭터가 한 것을 따라 하는 겁니다.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Repeat after me" 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그러다 보니 남의 디자인을 그대로 하거나 아니면 약간만 다르게 해서 거의 같은 것으로 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의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표절을 하면서도 죄의식마저 없다는 거지요. 이런 이유의 모방은 나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라 해도 결과는 아주 나쁩니다. 


디자인을 위한 인스피레이션을 얻는다고 잘 나가는 경쟁제품들을 잔뜩 스크랩해서 이미지 보드라는 부르기도 하고 경쟁제품 분석이라고도 부르면서 늘 쳐다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생긴 디자인을 하게 되거든요. 


따라서 디자인 수업의 인스트럭터들은 자기가 보여준 데모에 가깝게 그린 학생보다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서 그리는 학생들에게 훨씬 높은 평가를 해 줌으로써 따라 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방법을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바른 길이라는 것을 몸에 익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남이 디자인 해 놓은 것들을 베껴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라고 부르기도 아까운)가 될 수 있습니다.


Iskra ETA 80 (위 왼쪽부터 두개의 사진)과 디자인 표절 제품들. 잘 보면 우리나라의 것도 있슴. 


2. 잘못된 경쟁심


또 다른 경우는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을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것'들보다 더 예쁘고 더 팔릴만한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다 보니 잘 나가는 '남의 것'들을 적극적으로 들여다 보고 그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려고 하는데, 아무리 해도 그 '남의 것'이 더 나아보이기 때문에 그것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마무리되는 경우입니다. 또는 디자이너 본인은 많이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었는데, 경영진이나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들 눈에는 원래의 '남'이 더 나아 보이기 때문에 그것과 유사하게 만드는 것으로 결정이 나게 되는 거지요. 여기에 굳이 명기하지 않겠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디자인 도용 소송은 결국 경쟁 제품과 유사한 것을 만들어 '나도' 빨리 성공하려는 기업이 욕심에 디자이너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한 결과입니다.


작년 가을에 Apple이 소위 '노치'가 있는 iPhone X를 발표했을 때 대부분은 뭐 이런 디자인이 다 있냐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풀 스크린이라고 하면서 풀 스크린도 아닌 것을 만들었으니 솔직하지 않다고 손가락 질한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한데 이 물건이 잘 나가는 겁니다. 이러다 보니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메이커들의 디자이너들은 바빠졌습니다. 풀 스크린이 아닌 걸 만들어 놓고 풀 스크린 폰이라고 판매한 애플이 고맙기도 하고요. 순식간에 거의 모든 스마트 폰 회사들은 노치가 있는 풀 스크린 폰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마치 다른 그림 찾기 같습니다.


이러다가 애플이 내년에 다른 걸 만들면 또 다들 우루루 따라가겠지요. 더 이상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기 어려운 애플이 그래도 잘 나가는 것은 애플이 뭘 만들면 '나도'하고 따라가는 친구들은 많은 반면, '나는' 이렇게 할 거야라고 하는 친구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iPhone X (왼쪽)과 유사한 노치 디자인의 스마트 폰 모델들


3. 절망적인 마음에 표절


도저히 자신만의 생각의 나지 않는 경우에도 디자이너들은 모방, 또는 '적극적인 참조'를 하게 됩니다. Desparate 한 심정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남의 것을 가져와서 자기 것인 것처럼  하는 거지요. 내가 일하던 신시내티 대학교와 College for Creative Studies에서는 모방 (다른 사람의 디자인과 같게, 또는 매우 유사하게 디자인하는 것)과 표절 (그렇게 한 디자인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것)을 철저히 가려내서 적절한 처분 - 정학 또는 퇴학 - 을 합니다. 수업 과제에 제출한 여러 장의 스케치 가운데 두 장이 인터넷에서 본 것을 따라 스려서 제출한 경우, 정학을 받은 경우도 있고, 입학 지원 때 제출한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디자인이 표절인 것으로 나중에 밝혀져서 졸업을 1년 앞두고 퇴학을 당한 외국인 학생도 있습니다. 팀 작업을 한 것은 포트폴리오에 올린 경우 어떤 것이 자신의 작업이고 어떤 것이 다른 학생의 작업인지를 명시하지 않은 것도 표절에 포함됩니다. 다른 사람의 작업을 자신이 한 것이라고 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표절로 인해 문제가 되는 학생들은 대부분 표절이 죄악시되지 않거나 표절을 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국가 (나라 이름은 굳이 여기에서 들지 않겠습니다)에서 온 학생들입니다. 그 학생들은 표절의 의심을 받을 때 뭐가 잘못된 것인지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까지 지불한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생각하면 너무도 아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모방과 표절이 디자이너로서의 자살 행위와 같다는 것을 배웠다면 그때부터의 커리어를 위해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만일 모방이나 표절을 하지 않고는 디자인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더 낫겠지요.




이 모든 것의 발단은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어" 또는 "나도 그렇게 할 거야" 하는 유치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잘하면, 남의 디자인이 멋지기도 하고 게다가 잘 팔리기까지 하면 "나도 그렇게 따라 할 거야"라는 유아적인 욕망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남의' 물건을 베끼거나 아주 비슷하게 만들면 그 '남의' 성공을 따라 할 것 같은 기대를 하는 경영진에게 칭찬을 듣기도 하니, 예전 어른들 말투를 따라 하고 천재라는 칭찬을 듣던 기억이 날 수도 있고요. 심지어 남의 것을 거의 비슷하게 베낀 자신의 능력이 대단한 것으로 착각까지도 할 수도 있습니다.  


다 커서도 남들을 따라 하면 성장이 멈춘 것과 같듯이, 디자이너가 되어서도 남의 디자인을 베끼면 디자이너로서의 성장이 멈춘 겁니다. 강한 표현을 써서 말하면 남의 디자인을 내 것인 것처럼 하면 디자이너로서는 자살을 한 것과 같습니다. 디자인 모방이 워낙 큰 문제인 중국의 대학이나 기업에서 강의를 할 때는 실제로 이 표현을 씁니다. 남의 디자인을 베껴달라는 기업의 요구를 들어주면 당장은 돈도 생기고 직장도 유지하겠지만, 제대로 된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때가 오면 남의 것이나 베껴주던 디자이너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학생들이나 디자이너들이 심각하게 받아 들면서 어떻게 하면 모방을 하지 않고 디자인을 할 수 있는지 물어옵니다. 사실 중국의 디자이너들과 기업들에게 이런 것에 대한 조언을 해 주면서 걱정도 됩니다. 모든 중국의 디자이너들이 모방을 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데 노력한다면 중국 디자인의 수준은 길지 않은 시간에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모방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습니다. "나도 그렇게 해야지"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면 됩니다. 결국 해답은 디자인을 design이 아니라 de-sign으로 보는 자세에 있다는 거지요.


디자인 모방과 표절의 이유는 디자이너 본인한테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있습니다. 좀 심한 표현을 쓴다면  사망의 이유가 자살 또는 타살이라는 겁니다. 전자의 경우든 후자든 결과는 비극적입니다. 


https://brunch.co.kr/@sooshinchoi/45


모방과 표절이 추한 디자인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아래 글에 썼었습니다.

https://brunch.co.kr/@sooshinchoi/4


PS 1. 피카소의 어록 가운데, "Good artists borrow, great artists steal"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소 controvercial 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말은 남의 예술, 디자인을 가져다 쓰는 사람들이 즐겨 인용할 만한 말이지요. 


하지만 이 뜻은 전혀 다릅니다. 이 말에서의 steal의 의미는 단어 그대로 '훔쳐오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작업이나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나만의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PS 2. 모방과 표절을 하는 디자이너들은 아직 젖을 못 뗀 것과 마찬가지니까 기저귀를 밖으로 보이게 차고 다니도록 하는 벌을 주면 어떨까 싶네요.


PS. 3.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표절 디자인의 끝판을 보여주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전까지의 표절이 약간의 양심의 조각들이 보이는 것 들이었습니다. - 예를 들어서 Land Wind는 Range Rover Evoque를 카피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다르게 한 것. 또는 별 존재감이 없는 회사가 잘 나가는 회사의 제품을 모방해서 어떻게라고 살아보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런데 왕년의 가장 성공적인 기업이었던 모토로라가 1년 전에 발표된 Apple iPhone X를 마치 사진 찍듯이 '복사'한 것 같은 스마트 폰을 출시한 거라는 뉴스가 BBC에 올라왔습니다. 


https://www.bbc.com/news/technology-45208546


가짜 뉴스였다면 다행이겠지만, 모토로라가 중국 회사인 레노보의 자회사가 된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사진으로 보아서는 어떤 게 어떤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표절 디자인의 막장급입니다. 가격은 iPhone X의 반도 안 되는 $350라고 합니다. 같아 보이는 제품을 헐값에 살 수 있으니 팔리긴 하겠지요. 하지만  모토롤라와 이 제품의 디자이너(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들은 그 후안무치한 이름을 온 세계에 아리게 되었습니다.



모토롤라 P30도 얼핏 보기에는 반짝반짝한 스마트 폰이지만 제가 한 강의에 나오는 추한 디자인입니다. 아니, 추악한 디자인이지요. 물론 이런 추한 디자인을 만든 이들은 추악한 디자이너들입니다. 

이 디자이너들이 다닌 대학교, 교수들은 도대체 뭘 가르쳤을까요. 추악한 디자이너가 되는 방법? 제 블로그만이라도 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미시간 북촌에서 최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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