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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핑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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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n 27. 2024

첫날, 바다에 고꾸라지다.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서프보드를 바다 위에 올려놓았다. 바닷물과 내 허리춤이 서로 만나는 곳까지 걸어 들어갔다. 서프보드는 무서운 바다에서 나를 보호해 줄 안전 장비다. 보드와 나를 묶는 연결 안전끈이 있다. 내 발목과 보드를 연결한다. 인생에서 내가 안전끈으로 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일이 생겨도 끊어지지 않고 나를 잡아 줄 수 있는 끈, 보드를 밀면서 그 끈을 생각했다.

보드 위에 엎드리는 것, 앉는 것도 무서웠다. 보드가 흔들거릴 때마다 물속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초보자이기에 깊지 않은 곳, 바닥을 딛고 섰을 때 발이 닿는 깊이에서 강습을 해주셨다. 그럼에도 두려움은 여전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드 위에 엎드려만 있는데도 바다가 나를 삼킬 것만 같았다. 보드 위에서 일어서야 했다. 모래 위에서 연습할 때와 흔들리는 물 위에서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모래 위에서는 전혀 요동 없이 멋진 자세를 잡았다..

강사님이 외치는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좁은 보드 안에서 온몸이 반응해야 한다. 하나에 두 팔로 보드를 누르며 윗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다. 둘에 오른쪽 다리를 접어 앞으로 당겨 보드 위에 놓는다. 셋에 왼쪽 다리를 밀어 보드 중간쯤을 지나는 곳까지 놓으며 일어선다. 일어설 때, 시선은 앞쪽 먼 곳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몸의 무게중심은 왼쪽 다리에 두어야 한다. 시선이 앞을 향하지 않으면 앞으로 고꾸라진다. 나는 고꾸라지고 또 고꾸라지기를 반복했다. 보드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는 것도 안 됐지만, 시선을 먼 곳 앞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려우니까 내 바로 앞 바닷속을 향하는 내 시선. 반복하고 반복해도 여전히 바닷물에 온몸을 적셨다. 머리부터 곤두박질쳤다. 작은 파도인데도 그 파도로 인해 물속에 고꾸라졌을 때, 물속에서 몸을 바로 세울 수 없었다. 몸이 돈다. 통돌이라고 한다. 바다 바닥에 발을 내리고 싶은데, 돌고 있는 몸이 바로 펴지지 않는다. 순간 깊은 물 속인 줄 착각하고 허우적댄다. 내 삶도 그랬다. 남편이 나에게 거칠게 대했을 때, 그 말에 휘둘려 나를 잊곤 했다.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라 허우적댔다. 그것이 나를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때는 그랬다. 고꾸라질 때마다 무서워서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도저히 통돌이 같은 삶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았다. 1개월 동안 서핑을 하며 시선 처리, 보드 위에서 일어서기, 보드 위에 엎드려 앞으로 나아가는 패들링, 보드 위에 앉아 방향 전환하는 방법, 좋은 파도 찾기 등을 배웠다. 배운 내용을 익히기 위해 거의 매일 연습했다. 파도도 없고, 타는 이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혼자 연습하는 날도 많았다. 보드 위에서 떨어지는 일은 허다했고, 고꾸라지는 것도 여러 번 반복했다. 고꾸라져 통돌이 상황이 되어도 예전처럼 큰 두려움이 없다. 발이 바닥에 닿는다는 것을,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넘어진 만큼, 고꾸라진 만큼, 나는 더 좋은 자세를 잡아간다. 나에게 인생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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