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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핑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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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n 28. 2024

무서운 바다

바다에 걸어서 들어간다. 찰박찰박 소리가 난다. 촤아아 촤아아 파도 소리가 무섭게 들린다. 걸어 들어가니 깊이를 어느 정도 안다. 그런데도 나는 바다가 무섭다. 내가 바다에 빠지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것만 같다. 낮은 곳인데도 보드에 타는 순간부터 두렵다. 수영장에서도 그랬다. 수영장 바닥도 내 발에 닿을 정도로 깊지 않았다. 나는 수영 강습을 2개월 정도 받고 나서야 두려운 감정이 줄어들었다.

서프보드 위에 엎드리기도 하고, 앉기도 한다. 보드 위에 엎드려 두 손으로 노를 저으며 앞으로 나가기도 한다. 나는 왜 두려운 곳에 스스로 찾아갈까? 두려움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두려운 감정이 모든 감정을 장악한다. 교육대학에 다닐 때,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도 그랬다. 두려운 감정은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때, 교생실습 점수는 가장 낮았다. 내 삶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처음 교사로 발령받아 학생들 앞에 섰을 때도, 어린 자녀가 아파 울 때도, 공개수업을 할 때도, 낯선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일을 해야 할 때도, 남편과 대화 없이 살아온 많은 세월 동안 남편이 두려웠다.

나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도전한다. 파도를 가르며 무서운 바다에 들어가는 이유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무서움이 기쁨으로 바뀐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것을 경험했다. 폐암 수술 후, 무서움과 두려움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 감정은 나를 꼼짝 못 하게 옭아맸다. 두려운 감정을 이겨내야만 했다. 감정은 실체가 아니었다. 상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감정을 선택할 것인가? 나를 살리는 감정은 무엇인가? 기쁜 감정을 채우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선, 집 밖으로 나갔다. 자연을 찾아갔다. 산, 바다, 들에서 걸었다. 뛰었다. 기쁨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기쁜 감정을 담기 위해 매일 자연을 찾아다니며 걸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산속 새들이, 물과 나무가 도와주었다. 두려운 감정은 물러나고 감사와 기쁨의 감정이 나를 지켜 주었다.

폐암 수술 후, 명퇴를 하고 지방에서 기간제 교사를 지원할 때도 두려웠다. 포항에서 처음 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때, 긴장과 두려움이 기쁨이 되었다. 서먹함, 외로움, 긴장감, 두려움을 감사와 기쁨으로 바꾸었다. 생소한 지역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힘도 키웠다. 강릉 교동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할 때도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했다. 미운오리가 된 감정을 벗어버리려고 긍정의 감정을 키웠다. 작년부터 근무하고 있는 제주도에서도 그렇다. 친밀하지 않은 분위기가 외로운 마음과 야속하다는 생각도 살짝 들게 했지만, 금방 감사와 기쁨의 감정으로 바꿨다.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두려운 감정이 나를 가두었을 것이다. 나는 두려운 감정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오늘도 무서운 바다에 들어간다. 내 삶에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물리칠 힘을 키운다.

1개월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서핑을 했다. 강습은 8회, 나머지 시간은 혼자 파도를 탄다. 어느 날은 바다 위에 나 홀로 떠 있기도 했다. 바닷물에 온몸을 흠뻑 적신다. 시원하다. 물속 모래를 밟으며 걷는다. 보드에 오른팔을 걸치고 보드를 밀면서 걷는다. 바닷속에서 맨발 걷기를 하는 셈이다. 보드 위에 엎으려 양팔을 노로 삼아 힘껏 저어 조금 더 깊은 곳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큰 파도도 탔다. 기뻤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이젠 기쁨과 뿌듯함이 나를 감싼다. 이겼다.

2주 전쯤, 아들과 극장에서 '인사이드 아웃 2' 영화를 보았다. 한 사람 안에 여러 가지 감정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을 표현했다. 모든 감정이 다 중요하지만 기쁨과 감사의 감정을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늘도 서핑했다. 바다가 사랑스럽다. 귀여운 강아지처럼 다정하다. 매일 만나고 싶다. 무서운 바다가 사랑스러운 바다로 변했다. 하지만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은 들어가지 않는다. 선을 넘는 모험은 금물이다.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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