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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핑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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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n 29. 2024

바다에서 놀다

결혼 후, 바다에 놀러 간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여름휴가로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서해안 갯벌 체험, 동해안 해수욕장, 제주도에서는 바다보다는 자연을 구경하러 다닌 기억만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긴 세월에 걸쳐 열 손가락에도 안 되는 바다 경험이었다. 폐암 수술 후, 완전히 바뀌었다. 수술 후, 처음 몇 개월 아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강릉에서 지낼 때, 강릉 바다를 다녔다. 그 이후, 포항에 있는 대학에 다니던 딸과 2년 반 동안 포항에서 지낼 때, 포항 바다를 누볐다. 다시, 강릉에서 1년을 살면서 강릉 새벽 바다를 자주 걸었다. 2023년 작년, 제주도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함덕해수욕장, 이호테우 해수욕장은 내 놀이터가 됐다.

강릉 바다는 깊다. 파도가 거센 날에는 파도가 나를 끌어들일 것 같아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런 날에는 경찰분들이 순찰을 돌기도 한다. 소나무 숲에서 나는 솔향을 맡으며 바다를 걸었다. 강릉 집에서 송정해변까지 거리는 걸어서 50분 정도 걸렸다. 하루 목표는 걸어서 바다를 보고 오는 것이었다. 새벽 바다는 더 상큼하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교회와 가까운 강문해변에 구경하러 가곤 했다. 새벽 조깅으로 안목 해변까지 달려온 아들과 안목해변에서 만나 아침 묵상을 하기도 했다. 나는 교회바다 수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도 보았다. 강릉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확 열리는 느낌이 든다. 작은 두려움과 긴장이 한꺼번에 싹 쓸려가는 기분이 든다. 경포해변에서 쓰레기 줍기 봉사도 여러 번 했다. 나는 강릉 바다와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강릉 해변에서 자녀들, 강아지들과 걷기도 하고 먹기도 했다. 언니와 동생이 찾아왔을 때, 지인분들이 놀러 왔을 때, 친구가 다니러 왔을 때, 나는 그들과 함께 바다로 갔다. 바다를 바라보며 소나무 숲 속에서 달리기와 산책도 거의 매일 했다. 수술 후, 9개월 정도를 소나무가 있는 강릉 바다에서 놀았다. 경포해변, 사근진 해변, 안목해변, 강문해변, 정동진, 사천진, 주문진, 안인, 순긋해변, 송정해변. 강릉 해변이 궁금하여 다닌 곳들이다. 걸어서 가기도 하고, 버스를 이용하기도 하고, 내 차로 가기도 했다. 혼자라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 바다는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다음은 포항 바다다. 영일대 해수욕장, 칠포해수욕장, 오도리해수욕장, 송도해수욕장, 월포해수욕장, 구룡포해수욕장, 화진해수욕장, 이 중에서 집과 가장 가까운 영일대 해수욕장에 수시로 놀러 갔다. 집에서 걷기 시작하면 영일대 해수욕장까지 20분 정도 걸렸다. 다른 곳은 내 차로 다녔다. 칠포해수욕장은 딸과 함께 록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밤늦게까지 신나게 놀았던 곳이다. 영일대 해수욕장에 가는 중간에 산을 거쳐서 걸어가곤 했다. 산 위에 올라서 바다를 내려다볼 때, 넓게 펼쳐진 파란 바다는 내 근심을 다 가져간다.

제주도에 살면서 가장 먼저 친해진 바다는 함덕해수욕장이다. 제주도에 와서 처음 살던 곳이 함덕리였기 때문이다. 함덕해수욕장은 바다색이 에메랄드빛이다. 맑고 맑은 푸른빛을 띤다. 서우봉 언덕에서 함덕해수욕장을 내려다보면 해외여행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우리나라에서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바다색을 보곤 했다. 나는 하와이도 괌도 가보지 못했다. 함덕해수욕장은 괌, 하와이보다도 더 뛰어난 해변일 거라 생각하곤 했다. 아침 출근을 할 때에도, 퇴근할 때도 바닷가로 다녔다. 가끔은 퇴근할 때, 서우봉을 산책하며 내려오다가 바다를 즐기곤 했다. 함덕해수욕장에서도 딸과 놀았다. 딸이 잠깐 다니러 왔을 때, 바다 수영 놀이도 했다. 물속에서 딸 두 손을 잡고 끌어 주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꼭 바닷가를 산책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함덕해수욕장 산책로가 있었다. 좁은 방 안은 먹고 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곳일 뿐, 내 놀이터는 함덕해수욕장이었다.

작년 9월부터는 이호테우 해수욕장에서 논다. 이사한 덕분이다. 이호테우해수욕장은 내가 맨발 걷기를 시작한 곳이다. 맨발 걷기를 하며 바다와 대화도 하곤 한다. 마치 친구랑 이야기하듯이 대화한다. 모래를 밟으며 걷고 있을 때, 살랑살랑 발을 적시고 다시 돌아가는 바닷물. 마치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이호테우해수욕장에서는 쓰레기도 혼자 줍기도 했다. 바다를 돌본다는 마음으로 용기 내어 주웠다. 바닷가 모래를 밟기만 했는데 이제는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서핑이다. 내 발이 모래에 닿고 어깨까지 물이 차는 깊이까지 걸어간다. 보드가 안전 장비다. 넘어지지 않고 균형 잡힌 모습으로 보드 위에 서서 파도를 탄다. 퇴근 후,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맨발 걷기로, 서핑으로 친구가 된 바다다. 서울 집을 떠나온 지 6년이 되어간다. 두려움으로 찾아온 폐암은 나에게 바다라는 친구를 만나게 했다. 나는 바다에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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