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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Nov 07. 2024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

   뉴욕에서 알라딘을 보던 날, 딸과 미용실에 갔다. 뉴욕 시내 한편에 자리 잡은 좁은 미용실, 반갑게 맞아주는 한국인 여자 미용사분, 표정이 밝다. 나도 반가웠다. 한국말을 듣게 되다니, 뉴욕 한복판 미용실에서. 딸이 머리손질을 받는 동안 몇몇 손님이 왔다. 딸의 머리를 손질하시는 미용사분이 사장님이신 줄 알았다. 아니란다. 이곳 미용실에서 20년 넘게 일하는 미용사다. 외로워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한국에 가도 만날 친구도 없다. 한국 지인들은 기대감으로 말한다. 미국생활 몇 년 했으니 잘 살 거라고. 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부담감으로, 한국 방문을 멈췄다고 한다. 한해 한해 발버둥 치며 살다 보니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나있다고. 아직도 뉴욕에서 월세로 홀로 살고 있다고. 지나온 세월이 무심한 듯 말은 하지만, 표정만은 밝고 환하다. 

어쩌면, 찾아오는 미용 손님을 맞이하느라 세월이 흐르는 줄도 몰랐으리라! 한창 젊은 시절, 그때는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세월이 언제 흘러가나? 하는 답답함도 있었으리라. 외롭고 슬픈 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갈 수 없는 상황 사이에서 주저앉고 싶었을 젊은 시절. 그때를 잘 견뎌내고 50살이 훌쩍 넘은 나이. 미소 띤 얼굴, 이젠 뉴욕이 고향처럼 친근하다고 말씀하신다. 

   뉴욕, 서울, 제주도, 어디에서 살든지 살아내야 한다. 미용사, 교사, 주부, 사업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해내야 한다. 나도 지금 살아낸다. 사명을 받은 자처럼 꿋꿋하게 오늘을 산다. 아침에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밥을 꼭 챙겨 먹고 출근한다. 학교와 집 중간 지점, 제주오일장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다. 주차한 곳에서 학교까지는 걷는다. 걸음이 빨라진다. 출근길, 아침 운동이다. 학교에 도착,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 한 명 한 몀 이름 불러주며 인사한다. 매일 보아도 보고 싶은 아이들이다. 학급 아이들 모두가 함께, 친구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준다. 관심 갖기다. 존재 확인, 아이들도 하루를 살아낸다. 그 시작은 이름 불러주기다. 23명의 아이들과 나, 치열하지만 사랑을 키워가는 곳, 삶의 시간을 채워가는 곳, 그 좁은 공간에서 살아있음을 만끽한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간 자리, 기다란 걸레 자루 끝에 천 걸레를 걸치고, 바닥을 반질반질하게 닦는다.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내일은 아이들과 무엇을 할까? 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내일은 나를 지금 살게 한다. 직장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다시 걸어서 오일장 주차장으로 간다. 외로움 마음도 살짝 따라온다. 내 승용차는 내 좋은 친구다. 친구와 함께 도두봉에 간다. 어두워지기 전에, 도두봉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한다. 3바퀴, 4바퀴 돌고 나면 온몸에 열이 오른다. 소나무 냄새, 이름 모를 꽃에서 나는 진한 향기, 하루의 긴장을 싹 풀어 준다. 집에 도착, 저녁을 먹는다. 영어 뉴스를 들으며 먹을 때도 있다. 야채를 넣어 만든 잡곡밥, 닭가슴살이 들어간 된장찌개, 귤 한 개가 저녁 식사다. 요즘은 귤을 매일 먹는다. 동학년 선생님 한 분이 귤재배를 한다. 매일 아침 교실문을 열면 책상 위에 놓인 노란 귤이 보인다. 저녁을 먹었으니 또 산책을 한다. 밥을 먹고 나면 밖에 나가기 귀찮다. 그 귀찮음을 이겨낸다. 걷다가 뛰기도 한다. 20분 정도 뛰거나 걸으면 온몸이 따뜻해진다. 11월, 겨울에 접어든 밤이라 쌀쌀하다. 추위를 거뜬히 이긴다. 집에 돌아와 1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한다.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한다. 자세가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스트레칭이 잘 되는 느낌이다. 잠시 쉬는 시간, 핸드폰을 살핀다. 카톡, 인스타, 뉴스, 마지막으로 유튜브 찬양을 틀어 놓고 샤워를 한다. 탐라도서관에서 빌려 온 다섯 권의 책을 읽는다. 다섯 권을 번갈아 가며 조금씩 읽는다. 노트북을 켠다. 브런치스토리, 무엇을 쓸까? 어떻게 써야 하지? 그래도 쓴다. 애쓴다. 침대에 누워 기도한다. 하루가 끝난다. 새로운 하루를 기다리며 잠든다. 

  뉴욕 어딘가에서도, 오마하, 텍사스, 로스앤젤레스, 뉴저지,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하루를 맞이하고 보낸다. 다시 새 하루를 기다린다. 나에게 그 하루가 언제 멈출지 모르지만, 나는 그 하루를 살아낸다. 그 어딘가에서도 나처럼 하루를 살아내는 자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움직인다. 세상을 움직이는 그 한 사람, 그중에 나도 있다. 우리는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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