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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Sep 21. 2024

집착

2024.9.21. 토

아침에 딸과 전화통화를 했다. 딸은 현재 미국에서 생활한다. 통화가 끝나갈 즈음에, 집착이라는 말을 딸로부터 들었다. 딸의 모습을 보고 싶어 영상으로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집착이란다. 그래서, 이제 전화를 하지 않겠단다. 물론, 딸이 전화를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에게 살짝 경고의 메시지일 뿐임을 안다.  나는 집착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남편을 처음 사귀게 되었을 때부터 남편에게 집착했다. 약속 시간보다 2 시간이나 늦게 도착해도 나는 기다렸다. 그냥, 그 자리를 떠났어야 했다. 결혼 후에도 집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일이 바빠서 가정 일을 돌보지 못하는 남편에게 항상 기대를 했으니까. 학교 아이들에게도 집착했다. 가정에서 다져진 습관을 고쳐주겠다고 안감힘을 쓰고 매달렸으니까. 

딸과 통화하면서 들은 집착이라는 말이 나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한동안 듣지 않았던 말이다. 폐암수술 후, 내 삶을 바꾸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남아있는 예전 습관들이 있다. 오늘 아침에 그 습관들 중 하나를 알아챘다. 상대방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 맞게 내가 대처하면 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더 요구하기 시작하면 집착이 된다. 나는 그렇다. 

베란다 창문 밖, 비가 내린다. 이제, 이 비가 그치면 가을바람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무더운 여름이 지속되는 요즘이다. 10월이 다가오는데도 찌는듯한 더위는 떠나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날씨도 집착하는 걸까! 

나는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다. 일에 집착하면 몸이 상한다. 사람에 집착하면 마음이 다친다. 내려놓는 삶. 집착하지 않는 삶. 내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이다. 누구와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직장에서 중요한 일을 맡지 않아도, 아쉽지 않다. 허전하지 않다.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집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창문밖 새소리, 바다 풍경,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 오며 가며 잠깐 만나는 사람들, 읽고 있는 책, 그리고 성경말씀이면 된다. 지금 나에겐 그렇다. 오늘 하루도 집착하지 않는 삶이 되도록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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