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것보다 .

2018년 8월 30일 폐암수술 후

by 수수

2022년 11월 5일(토)

강릉에 있는 강문해변에 왔다. 스타벅스에서 일기를 쓰고 있다. 오늘은 2022년 11월 5일 토요일이다.

폐암수술을 하고 벌써 5년째가 되어간다.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언제 시간이 흘러 5년이 지날까 손꼽아 기다리곤 했었다. 하루에 몇시간씩 산책을 하기도 하고, 산에서 몇시간씩 걷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산을 걸을 때는 무서움도 다가왔지만 그깟 무서움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어지기도 했다.

바닷가를 걷고, 강릉 강문해변부터 주문진 해변쪽으로 무작정 걷기도 했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은 여기저기 탐험가처럼 찾아 다니며 걸었다. 산, 바닷가, 공원 등.

태어나서부터 암수술하기 전까지의 56세에 이르기까지 걸었던 것보다 4년동안 더 많이 걸었을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며 누린 시간들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도 그렇다. 우리 가족에 대하여 더 깊은 사랑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그렇다. 모든 것이 50년 넘는 시간보다 4년 동안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누릴 수 있었다.


아들딸과의 시간도 그렇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로서 아들딸과 낮에 함께 있어 준 시간이 방학 때 잠깐씩 빼고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폐암 수술 후 곧바로 아들과 강릉에서 몇개월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아들과 커피숍도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도 가고, 산책도 했다. 아침에 함께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기도 하고 아들이 요리해 준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기도 했다. 아들이 힘들어 하는 것도 보았고, 슬퍼하는 것도 보았다. 아침에 출근하는 아들이 입는 옷도 바라봐 줄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나와서 피자를 건네 주고 가는 아들의 따뜻한 모습도 보았다.

포항에서 딸과의 시간을 보내며 딸의 힘든 시간들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아픈 마음을 함께 아파하며 안아줄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 딸과 함께 예쁜 카페들을 찾아 다녔고, 맛있는 음식들을 찾아 다녔다. 딸을 기다리며 정성껏 요리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로 인해 우리는 더욱 더 서로를 알아갔다. 어쩌면 그 전까지는 그냥 겉핥기식의 엄마와 자녀와의 관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딸은 강릉에 왔다갔다. 함께 보내는 일주일 넘는 시간동안 딸은 나에게 하루 3끼 맛있는 요리를 해주었다. 딸이 이렇게 요리를 잘하는 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뚝딱뚝딱 소리가 나면 딸의 요리가 등장한다. 신기하다.


"엄마. 엄마랑 같이 있는동안 내가 세끼 다 요리해 줄테니까 엄마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마.!"

밝고 환한 모습으로 나를 위해 요리를 하는 딸을 보았다. 포항에서의 그 아픔을 다 이겨내고 이제 또 다시 밀려오는 아픔들도 이겨내는 힘을 길러가며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숙해 가는 딸을 본다.

미소아 맑음이 강아지다. 미소아 맑음이도 우리에게 소중한 강아지다. 정말 착하고 사랑스럽다. 딸이 요리할 때 미소와 맑음이가 딸옆에 딱 붙어있다. 그 광경이 정말 사랑스럽다.


강릉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정말로 사랑하며 지도하는 아들이 존경스럽다.

"엄마, 하고 싶은대로 하면 돼요." 아들은 늘 이렇게 말해준다. 우리가족에게 다 내어 주는 아들이다.

폐암수술 후 나는 아들딸이 주는 이런 사랑을 누리며 지내고 있다.


남편은 나를 걱정해 주는 말을 입으로 한번도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마음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뇌종양일 때도 그렇고 지금 폐암 수술로도 그렇고 남편으로서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폐암수술 후 나는 남편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에는 원망스럽기도 하고, 미운 마음이 컸었는데 이렇게 바뀌고 있다.


폐암은 나의 마음을 더 낮아지게 해 주고 있으며 나를 더 풍성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가고 있다. 이것이 공평한 것이라고 하는 걸까? 잃은 것 같지만 얻은 것이 더 많다.




이전 09화그대로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