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려움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해 살아가려고만 했다. 청년의 때를 지나서 그 누군가가 남편이 되었다. 남편으로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하고부터는 자녀들이 내 두려움을 덮어 줄 수 있는 대상이었다. 결혼 전에는 남편을 떠올리면 포근하고 두려움이 사라졌었는데, 결혼 후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자녀들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 동료들과 대화하다가도 무언가 잘못한 것 같아서 두려움과 긴장을 느끼곤 했다. 물건을 사러 옷 가게에 들어갔을 때 점원이 불친절하면 두려워졌다. 어떻게 말을 해야 점원으로부터 상냥한 말투를 들을까 하는 긴장감이 있었다. 음식점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모든 곳에서 사람들과 대면하여 대화하게 될 때 나는 항상 상대방의 반응에 긴장했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나서는 자녀들과 대화할 때도 소통이 잘 안될까 봐 긴장하곤 했다.
하지만 폐암 수술을 하고 나서 60살이 되어가는 지금의 나는 그러한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남편이나 자녀들을 의지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동료들이 나에게 항상 친절하게 반응해서도 아니다. 음식점이나 옷 가게 등에서 점원들이 친절해서도 아니다. 암이 가져다 준 두려움이 어느 것들보다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그 큰 두려움에 눌려 스러져 가는 것을 선택할 것인지, 한걸음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을 때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러면서 덩치 큰 두려움의 대상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부모와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갈등이 생겨도 두렵지 않다. 남편으로부터 따스한 말을 듣지 않아도 그렇다. 자녀들과 소통이 잘 안되어도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간다. 나와 대면하게 되는 사람들의 굳은 표정에도 긴장하지 않는다.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모든 것들이 내 탓이 아닌 것이 많음을 인지하고 나고부터다. 마음을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지킬 힘이 생긴 것이다. 폐암 수술 후,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나고부터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하던 마음을 비울 수 있게 된 후 찾아온 모습이다.
폐암은 이렇게 내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나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눈치를 살피며 두려워하는 감정에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나는 두려움으로부터 당당하다. 오늘도 용기를 내 작은 실천을 했다. 몸이 피곤했는데,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조퇴를 했다. 사람들이 시선과 완벽해지려는 두려운 마음에서 벗어난 증거다. 남편과 자녀들의 도움 없이 제주도에서 살려고 준비하는 것도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내일을 걱정하며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주어진 생활에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폐암 수술 후 예전의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선물이다. 두려움이라는 마음 때문에 이 선물을 잃고 싶지 않다.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받으려는 욕심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으로부터 독립했다. 욕심이 아닌 감사로 그 자리를 채우니 두려움으로부터 독립하기가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