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암 수술 후 벌써 10번째 이사를 위한 짐을 정리하고 있다. 서울에서 수술 후 강릉으로 내려올 때는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딸이 캐리어에 정리해 주었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 두 개가 전부였다. 아들이 강릉으로 가져다주었다. 수술 후 바로 강릉으로 내려와 아들과 함께 지냈다. 두 번째 거주지를 제주도 열방대학 기숙사로 옮기게 되었을 때 짐이 더 늘어나 있었다. 부피가 늘어 난 것은 옷이었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급한 짐만 챙겨 넣어 비행기에 실었다. 나머지 짐은 박스에 정리하여 택배로 받았다. 기숙사 방에는 2층 침대 두 세트가 놓여 있었고, 그 곳에서 4명이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개인 옷장에 몇 가지의 옷을 걸어 놓고 그 외에는 침대 밑에 쏙 들어간 짐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세 번째 거주지인 제주도 한 달 살기 숙소로의 이동은 기내용 여행 가방에 넣어서 여러 번에 걸쳐 걸어서 날랐다. 누군가가 차로 실어다 준다고 했지만, 그냥 혼자 조금씩 옮기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다. 이렇게 짐을 싸고 풀고를 4년 동안 9번을 했다. 포항에서 2년 동안 3번의 거주지를 옮기면서 지내는 동안 책, 요리도구들, 요리용 가전제품과 식기류들, 그리고 이불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래서 다시 강릉으로 짐을 옮겨야 할 때는 너무 복잡하고도 힘들었다. 부엌에서 사용하는 요리 도구 몇가지와 이불, 옷, 책둘이 살든 혼자 살든지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짐 정리는 너무도 복잡했다. 쏘렌토 자가용에 다 실어야 했기에 줄이고 또 줄였지만, 트렁크와 뒤 의자 조수석까지 꽉 차서 운전할 때 옆과 뒤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당근마켓에 나눔도 많이 하고 버리기도 많이 했는데도 그랬다. 강릉에서 방을 구하는 동안 한 달 살기 하면서 그 많은 짐들을 좁은 화장실에 쌓아 놓고 있었다. 지금 사는 강릉에 있는 임대 아파트에서 이제 2023년 1월에 다시 제주도로 거주지를 옮겨 간다. 먼저 한 달 살기부터 해보기로 했기에 짐을 줄여야 한다. 새 책들, 쓸만한 자잘한 물건들을 교회 재활용 가게에 갖다 놓기로 했다. 쓸만한 가전제품들은 당근마켓에 아들이 내어놓고 나눔을 하고 있다. 이불도 반으로 줄였다. 옷도 꼭 필요한 것들만 골라서 담았다. 쏘렌토 자가용 트렁크와 뒤 의자 그리고 조수석에 실을 수 있을 만큼만 챙기고 있느라 힘들다. 짐을 줄이는 것이 참 복잡하고 힘들다.
결혼 후, 자녀들이 성장하는 동안 옷장에도 옷들이 꽉 차도록 늘어 났다. 부엌에는 그릇과 조리도구들도 많아졌다. 책장에는 결혼 전에 읽었던 책부터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구입한 책들이 안방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러한 물건들 중에는 몇 년 동안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도 참 많았다. 폐암 수술 후, 짐을 줄여 가기 시작했다. 강릉으로 갈 때 가지고 간 짐이 내 물건의 전부가 되어야 했다. 서울에 남기고 온 짐들은 가끔씩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나눔을 하거나 재활용품 수거함에 넣었다. 아들 딸이 사용하던 책상과 옷장을 나눔할 때에는 너무도 미련이 남아 마음이 힘들었다. 아들 딸의 정감을 느끼며 놓아 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장에 있던 책들을 중고서점에 팔았다. 낡은 책들은 종이류 재활용품 수거함에 넣었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책장 하나도 시조카에게 주었다. 이러한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깐씩 서울에 올라가 있을 동안에 남편을 설득해야 했다. 많은 물건들을 거실에까지 늘어 놓고 쌓아 놓기를 좋아하는 남편이었다. 아무리 오래되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도 버리는 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남편이었기에 너무도 힘들었다. 그렇게 3년여에 걸쳐서 서울에 있던 내 물건들과 아들 딸의 물건들은 다 정리가 되었다.
암 수술 후, 처음 강릉에서 1개월동안 아들과 함께 생활할 때에는 늘어 난 짐이 없었다. 제주도 열방대학 기숙사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간 짐은 겨울 옷과 신발들, 몇권의 책, 이불들, 전기장판, 노트북, 일기장 등이 전부였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과 택배 박스 세개가 되었다. 제주도에서 강릉으로 다시 돌아와 아들과 반년정도 다시 함께 생활하는 동안에는 별다른 짐들이 늘어나지 않았다. 아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사용하게 되어서 필요한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포항에서 딸과 함께 생활을 하다보니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딸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기 위해서 오븐도 샀다. 고구마를 구워먹기 위해 에어프라이어와 따뜻한 차를 마시기 위해 커피포트도 구입했다. 요리를 해먹어야 되니 조리도구들도 샀다. 후라이팬, 냄비, 그릇들, 도마, 칼, 이불도 더 사야했고, 딸을 위해서 예쁜 침대도 구입했다. 작은 책상과 테이블 그리고 안락의자도 들여 놓았다. 딸과 함께 지내는 동안 짐이 다시 많이 늘어났다.
다시 강릉으로 거주지를 옮겨 혼자 살기 위해서는 포항에서 늘어 난 짐을 줄여야 했다. 침대가 아까워서 이삿짐 센터의 도움을 얻을까도 생각했으나 욕심을 버렸다. 늘어 난 짐을 다시 나눔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2년 동안 사용한 것에 감사하며 당근마켓에 싼 가격에 내어 놓았다. 바로 바로 사려는 사람이 연락을 해왔다. 뜯지 않은 식용유, 참치캔 등과 책, 안락의자 두 개와 옷걸이, 거울, 책상, 의자 등은 무료 나눔을 했다. 복도에서 물건들을 가지고 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행복했다. 새로 구입했던 침대 두 개는 정말 좋아서 이사할 때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하지지만 이것들도 나눔을 했다. 2년동안 평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 가격만큼 충분히 사용했다는 마음으로 나눔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다른 물건들에 대해서도 그동안 충분히 그 가격만큼 누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있어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건네주는 사람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 행복했다.
이렇게 나눔을 하고 나니 쏘렌토 자가용 트렁크와 뒷좌석에 채울 만큼만 남았다. 이불이 부피를 많이 차지했다. 짐을 가득 실은 차를 운전하여 망상에 있는 한달살기 주거지로 이동하여 짐을 정리할 때에는 너무도 힘들었다. 그렇게 많은 물건들을 정리했는데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에어프라이어와 오븐, 프라이팬, 그릇들 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달살기하는 집에서는 살림도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방보다 조금 넓은 화장실에 짐들을 쌓아 놓아야 했다. 그렇게 한달살기가 끝나고 1년 동안 거주지를 옮겨 사는 동안 아들이 생활하다 놓고 간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 밥솥, 전자레인지, 침대 등이 내 짐이 되었다.
이제 제주도로 거주지를 옮기기 위해 그 짐들을 정리했다. 아들이 2주 동안 당근마켓에 정말 싼 가격에 내어 놓았다. 에어프라이어, 오븐, 커피포트, 밥솥, 토스터기, 주방에서 사용하는 모든 도구들과 그릇들, 에어컨, 침대매트리스, 세탁기, 전자레인지, 작은 인덕션, 거울, 테이블, 의자 등등 많은 것들을 사람들이 가지고 갔다. 물건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현해 주셨다. 아들이 너무 싼 가격에 내어 놓아서 살짝 아까운 마음도 들었던 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그렇게 나누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감사했다. 옷들은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모두 교회 나눔가게에 갖다 놓았다. 봉사하시는 분이 고마워했다. 내가 사용하던 물건을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 놓게 되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행복했다.
남은 것은 이불과 생필품 그리고 몇 권의 책과 노트북, 계절별 약간의 옷들, 좋아하는 악기 플룻, 신발 몇 켤레... 이러한 것들이 전부가 되었다. 짐을 줄일 때마다 인생의 짐을 덜어 놓는 것 같은 가벼운 마음이 생긴다. 한 주거지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은 그 장소에서 나눔으로 내어놓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그리고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필요한 조금의 것들을 소박하게 준비하는 재미도 느끼며 살기로 마음을 갖는다. 잠깐동안 사용할 때에만 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건, 장소, 일터 등 무엇이든지 그저 잠깐 내가 거처 지나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제는 움켜 쥐는 것을 하지 않아야 겠다는 마음을 크게 갖는다.
"엄마, 제주도에 가면 요리 안해 먹을거야?! 다 나눔했어?"
비우다 보니 필요한 것들도 내어 놓게 되는 일이 생겨서 그 순간 아쉽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기뻐할 것을 생각하면 좋은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채워졌다. 요즘은 이 세상을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것을 자주 되새기며 매일 매일 비우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
근무하는 학교에서 자주 나누는 것을 했다. 많이 구입했던 얼굴팩을 한 묶음씩 동학년샘들께 나누어 주었다. 건강다이제스트 잡지사에서 인터뷰에 고맙다고 주신 건강차를 한 박스씩 나누어 주었다. 또 집에 있는 사과를 가지고 가서 나누어 먹기도 하고, 남편이 보내 준 귤을 가지고 가서 나누어 먹었다. 아들이 사다 준 제주도 귤초코렡을 나누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산타크로스가 온 것 같아요."
함께 있는 공동체 안이 행복해 보여서 감사하다.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감사하고 나눌 수 있는 마음과 공동체가 있음에 감사하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 기회가 될 때마다 나누어야겠다는 마음과 내 것을 비워 가볍게 하는 것이 얼마나 삶을 더 평안하게 하는 지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