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해도 돼.

by 수수

쑥스럽고 수줍어하던 모습은 사실 수치심 때문이었다. 성장하면서 예쁘다는 소리도, 똑똑하다는 칭찬도 가족들에게 듣지 못했다. 어쩌면 전혀 듣지 못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오빠 두 명, 언니, 남동생, 여동생, 정신지체장애인 삼촌과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그리고 또 다른 삼촌과 함께 살았다. 걷지 못하고 늘 기어 다니던 정신지체장애였던 삼촌을 나는 늘 안쓰러워했다. 하지만 언니는 그 삼촌을 놀리며 달아나곤 했다. 그 삼촌을 뒷바라지하는 일은 모두 며느리인 어머니가 하시게 되니까 할머니가 어머니를 시집살이시키며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삼촌을 미워했다. 그럴 때 내가 언니의 행동을 말리면 언니는 화살을 나에게로 돌리곤 했다.그래서 나는 언니가 늘 무서웠다. 언니는 똑똑했다. 친척과 다른 동네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학교 모든 선생님으로부터 늘 똑똑하다고 칭찬받곤 했다. 언니는 늘 당당하고 기세가 등등한 모습이었다. 친구들도 언니를 모르는 아이들이 없었다. 여동생은 예쁜 아이로 언니는 똑똑한 것으로 그렇게 인정 받았고 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려서부터 가족들과 친척들 앞에서 나는 자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수줍어하고 말도 잘하지 못했다. 말이 없는 아이였다. 아버지가 너무 어려워서 대화도 잘하지 못했다. 다른 형제들은 하고 싶은 말들을 다 잘하는데 말이다. 언니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고 아버지와의 사이도 소원했다. 그러다 보니 누구와 대화하는 것이 두렵고 긴장되기도 하며 무서웠다. 말을 잘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어서 사람들 앞에 서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만 가득했다.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다.


젊은 시절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렇던 내가 교사가 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또 나에게서 말하는 것을 빼앗아 간 큰일이 생겼다. 남편을 만나며 행복을 꿈꾸던 신혼생활부터 남편으로부터의 폭언과 폭력은 나를 더욱 수치심으로 가득 차게 했고, 아이들을 이러한 환경에 있게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강하게 자리를 차지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다 알고 있는 형제들을 만나는 자리는 나에게 기쁘지 않았다. 언니와 여동생은 반대로 늘 자신이 가득 차 있었고, 남편에게 당당했다. 아버지와 친근하게 지냈던 언니와 여동생은 남편과도 그렇게 당당하고 친근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버지 앞에서 늘 긴장하면서 혼나지 않으려고 모든 일을 잘하려고 애썼던 나는 남편 앞에서도 그렇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당해지려고 전신 마사지도 받았다. 멋진 옷과 구두도 사 신었다. 비싼 돈을 투자하여 머리염색과 파마도 했다. 그렇게 하면 남편 앞에서 당당하고 자신감이 생길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내 안에 숨겨진 수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직장 생활하면서 자녀를 돌보다 보니 낮에 간식 한 번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다. 자녀들이 아플 때도 함께 있어 주지도 못했다. 자녀들 참관수업 때도 나는 다른 학생들과 있었다. 자녀들 손잡고 다니며 많은 이야기도 들어주지 못했다. 며칠씩 아이들만 친척 집에 남겨 놓고 연수를 가기도 하고 수학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자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수시로 챙겨줄 수도 없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나를 늘 죄책감에 빠뜨렸다.



폐암 수술 후 예전의 나는 죽었다. 새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수치심도 죄책감도 다 지워버리기로 했다. 마지막 삶을 향한 진정한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것들이 나를 망가지게 하는 것을 그냥 놓아두지 않기로 했다. 이제 당당하게 살아가며 더 활짝 열린 마음으로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누구 앞에서든 나는 당당하다. 내 생각을 말하고 내 의지를 말한다. 수줍어하지도 죄책감으로 엎드리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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