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좁다. 교사 목소리가 모든 아이들에게 전달되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넓이다. 아이들 책상이 교실 안을 가득 채운다. 몇몇 아이들이 함께 모여있을 공간은 교실 뒤쪽이나 앞쪽, 벽이 있는 양 옆쪽 빈 공간이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그런 공간에 두세 명씩 모인다. 고학년과 저학년 학생의 움직임이 다르긴 하지만 쉬는 시간은 왁자지껄 서로 떠드는 시간이다. 다른 친구 자리 옆에 다가가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함께 놀잇감을 만들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3월 초만 되면 교실 속 아이들 모습을 관찰하느라 내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다. 며칠이 지나도록 오로지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는 아이가 유독 신경이 쓰인다. 움직임이 거의 없는 아이다. 어느 학년 담임교사를 하든지 해마다 보게 되는 모습이다. 자기만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다.
몇 년 전 2학년 담임교사였을 때였다. 나는 한 여자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쉬는 시간마다 말없이 혼자 앉아 있는 아이였다.
“주아야!”
책상 위에는 동화책도 없었고, 그림 그릴 종이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듯 표정도 시무룩했다.
주아는 꼭 필요한 말만 간신히 말하는 아이였다. 가늘고 작은, 곁에 있어도 들릴락 말랑한 목소리로. 급식 시간에는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 아이였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은 가녀린 몸이어서 나는 주아에게 항상 조심스럽게 대했다. 발표를 시킬 때조차도 혹여 마음을 닫을까 봐 살살 주아의 눈치를 살폈다.
3월 첫날부터 주아는 유리 상자 안에 있는 아이 같았다. 누군가 자기 주변에 다가가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몸짓이었다. 눈빛과 표정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수학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교과서에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한 명 한 명 살피며 지나가다가 주아 곁에 멈췄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주아야, 그 문제 푸는 거 잘 안되는구나!” 나는 힘들어하는 주아를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지금 하고 있어요.” 주아는 바로 경계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대답했다. 다른 아이들이 다 풀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주아는 혼자 끙끙대며 도움을 거절했다. 옆 친구에게 물어보아도 된다고, 서로 같이 도우며 배우는 거라고, 지금 몰라도 창피한 거 아니라고 말해 주어도 주아는 혼자 문제와 씨름하듯 했다.
국어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경험한 일을 글로 쓰는 시간이었다. 꾸며주는 말을 넣어 짧은 문장을 만들거나, 가족과 함께 보낸 이야기를 글로 쓰는 시간이었다.
주아는 멍하니 국어책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글로 채워 넣어야 할 부분을 어떻게든 다 채운 상태였다.
“주아야, 어제 있었던 일 생각해 봐 봐.” 나는 주아 곁으로 가까이 갔다. 주아가 내가 한 말을 밀어낼까 봐, 주아 마음이 다칠까 봐 속삭이듯 말했다.
“생각이 안 나요.” 주아는 울먹이며 말했다.
“어제저녁에 먹었던 음식에 대해 써도 돼. 읽었던 책 제목만 써도 되고. 학원에서 있었던 일 써도 되고.”
나는 낑낑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주아를 어떻게든지 도와주어야 했다.
주아는 한 시간 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글자를 모르는 아이도 아니었다. 학습부진 아이도 아니었다. 주아는 자신 안에 꽁꽁 갇혀 있는 듯했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이 힘든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 사이에 들어가 함께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였다.
3월 한 달이 지나고, 4월이 시작되었을 때, 주아 곁에는 몇몇 여자아이들이 모여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혼자가 좋아요.’ 라던 주아의 말이 사라졌다. ‘생각이 안 나요.’ 라며 굳어있던 주아의 연필 잡은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글쓰기 시간뿐만 아니라 수학 시간에도 묻고 또 물었다. “선생님, 이거는 어떻게 해요?”
국어 책에 짧게 쓰는 문장뿐만 아니라 글쓰기 줄공책 한쪽을 가득 채웠다. 쉬는 시간에 몇몇 친구들과 교실 뒤쪽 바닥에 앉아 게임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춤 연습을 하는 두 친구를 도와주기도 했다. 두 친구의 춤 동작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주아를 가두고 있던 유리 상자가 깨어졌다.
그러기까지 나는 주아에게 수시로 다가갔다. 주아가 밀쳐내면 살짝 물러섰다가 다시 찾아갔다. 주아의 마음을 두드렸다. 아주 가볍게 조심스럽게.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주곤 했다.
“주아야, 은지와 수정이와 게임 같이 해볼래? 저 게임 주아도 좋아하지? 은지와 수정이도 주아와 함께 게임하는 거 좋대. ” 나는 주아를 챙길만한 여자 아이 두 명에게 미리 부탁해 놓고, 혼자 앉아 있는 주아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글을 쓰지 못하던 주아가 한 문장을 썼을 때, 그 벅찬 기쁨을 주아와 다른 아이들에게 표현했다. 그 한 문장을 쓸 때까지 재촉하지 않았다. 기다려 주었다.
“그래, 주아야, 네가 생각날 때 쓰면 돼, 괜찮아, 나도 어느 땐 한 문장도 못 쓸 때가 있단다.” 라며 위로해 주곤 했다. 사실, 나도 노트북 앞에 앉아 한 문장도 못 쓸 때가 있었기에 더욱 주아의 마음이 공감이 되었던 거다.
주아는 3월 내내 거의 매일 아프다는 말을 했었다.
“배가 아파요.”
“머리가 아파요.”
하루에 한 번씩 보건실에 왔다 갔다 하던 아이였다. 주아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 있을 때, 나는 ‘기다릴게’라고 말해 주었다. 실수했을 때, ‘괜찮아’ 라며 곁에 다가가 토닥여 주었다. 나도 그런 적이 많다며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잘못된 거 아니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학급 안에서 마음이 열린 주아는 4월 이후로 아프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창피당할까 봐,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던 주아의 모습이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자주 다가왔다. 방과 후, 돌봄 교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기 전이면 항상 내가 있는 교실 문을 열었다.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고 나를 불렀다.
“선생님”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지만 힘이 있었고 밝게 웃고 있었다.
“선생님, 이거 선생님 드리려고 가지고 왔어요.” 귀엽고 작은 두 손에 늘 무언가 담아 왔다. 어느 날에는 돌봄 교실에서 만든 예쁜 고리, 돌봄 선생님께 받았을 과자 1개, 하트 모양의 쪽지에 쓴 편지였다. 어떤 날은 나와 같이 하교하겠다며 내 퇴근 시간을 기다려 주기도 했다.
“주아야, 집에서 부모님이 기다리시는데 빨리 가야 하잖아.”
나는 걱정이 되면서도 그런 주아가 고마워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주아에게 말하면, 부모님께 말씀드렸다며 관찮다고 말했다. 퇴근할 때, 내가 주아 손을 잡고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주아가 내 손을 잡아 준 거였다. 내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아가 사는 아파트까지는 걸어서 7분 거리였다. 그 시간은 내가 주아로부터 좋은 교사임을 확실하게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아! 이렇게 다가가면 되는구나!’
나는 내가 받고 싶은 대로 아이들에게 해주었을 뿐이었는데, 아이들에겐 스스로 일어설 힘이 되어 주었던 거다. 나는 주아로부터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주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