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아이의 감춰진 진실

by 수수


나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 상황을 직면해야만 했다. 나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상담사도 아니다. 어느 때는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기도 했고, 학년 초가 되면 싸우는 아이들이 학급 명단에 들어있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초등학교 학생을 저학년과 중학년, 고학년으로 구분하자면 1.2. 학년과 3.4학년, 5.6학년으로 나눈다.

10년 전 일이었다. 6학년 남학생 중에 욱하는 성격의 아이가 있었다. 6학년에는 이런 성향의 아이들이 다른 학년보다 더 많았다. 6학년 담임교사를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다른 반 선생님에게 볼 일이 있어서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몇몇 아이들이 헐레벌떡 나에게 달려왔다.

“선생님, 빨리 교실로 가야 해요. 혁준이가 시훈이 배를 발로 밟고 있어요.”

또 얼마나 큰일이 생긴 걸까? 급히 교실로 달려갔다. 어느 순간에 벌어질지 모르는 폭력적인 상황, 학급 안에 ‘그 아이, 힘든 아이야.’로 표현되는 아이 한 명만 있어도, 나는 늘 불안했다. 화장실도 급히 다녀오곤 했다.

혁준이는 그런 아이 중 한 아이였다. 교실에 들어서자, 교실 뒤쪽에서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훈이는 누운 채 일어나지도 못하고 밟히고 있었다. 혁준이는 그런 시훈이의 모습에도 아랑곳없이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나는 혁준이 팔을 잡고 시훈이로부터 끌어냈다. 그 순간, 혁준이가 나에게 잡힌 팔을 휘둘러 밀쳐 냈고, 나는 나가떨어졌다. 다른 아이들이 시훈이를 일으켰다.

혁준이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 한 아이였다. 그 아이 곁에는 다른 아이들이 가려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폭력성 때문이었다. 혁준이는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6학년이 될 때까지 현장체험학습이나 수련활동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했다. 6학년 수학여행 참여 동의서에 참여하지 않음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혁준이 어머님께 연락을 했다. 혁준이 어머님은 혁준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학교 이외의 장소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혁준이가 집을 떠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수학여행도 못 보내겠다고 했다. 혁준이는 가족가 떨어져 지낼 때 강박증세를 나타낸다고 했다. 나는 혁준이 어머니 마음을 설득하고 싶었다. 혁준이가 초등학교 마지막 수학여행에 다른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면 좋겠다고, 혁준이 바로 곁에서 도와주며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 거니까 혁준이가 참여하면 좋겠다고.

내가 고학년 담임교사를 하는 목적을 이루고자 고심하며 도전한 일이었다.

혁준이는 수학여행에 함께 갔다. 1박만 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혁준이는 행복해 보였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한 것이었다. 그 기간 동안 혁준이에게서 폭언이나 폭력은 전혀 없었다. 나는 혁준이 어머님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뿌듯했다. 그동안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학교 밖 활동, 더군다나 수학여행에 참여하도록 포기하지 않고 설득해 주었다며 고마워했다. 난투극 같은 교실 상황을 겪으면서도 교사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한 아이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것, 그 일을 하는 것이 교사라는 것, 나에게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한 주먹만큼 더 채워주는 일이었다.


20여 년 전 일이었다. 이 때도 6학년 남자아이였다. 구체적인 장면이 생생히 떠올려지지는 않는다. 다만 트라우마처럼 크게 각인된 장면이 있다. 그 아이가 화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했던 행동이다. 그 아이가 자신 앞에 있던 의자를 들어 올려 내 가까이로 던졌던 거다. 싸움을 말리며 그만하라는 나의 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 순간 나는 강한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 그 마음의 후유증은 몇 날 며칠 동안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그 수치심을 감추려고 나는 내 앞에 있던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그 아이의 행동을 제압하려는 의지였다. 하지만, 교사로서 그렇게 한 내 행동은 옳지 않았음을 그 순간 바로 알아차렸다. 교사로서 자존감을 높이겠다고 했던 행동이 오히려 더 큰 수치심으로 나를 괴롭혔던 일이다.

교사들이 고학년 담임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다툼이 일어나거나, 감정 조절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을 경우, 교실 안에서 수시로 폭력적인 일이 발생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교실 안에서 학생의 폭언과 폭행이 있어도 담임교사에게 딱히 지원받을만한 것이 없던 때였다. 교사는 가해한 학생과 대화를 하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끌어 내야 하고, 피해를 본 학생을 다독이며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어야 했다. 두 학생 사이에 서로 ‘미안해’라는 말이 오고 가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양쪽 부모님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여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나는 교사로서의 능력이 없는 걸까?’ ‘내가 아이들에게 다른 교사들보다 물러 터지게 보여서 그런가?’라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른 학급에서 유사한 일이라도 생기면 그건 아닌가 보다, 라며 스스로에게 힘을 주기도 했다. 교사로서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던 젊은 교사 시절의 일들이었다.

다투는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는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힘이 부족했다. 자신이 다른 아이로부터 불편하다고 느낄 때, 말로 표현하기보다 신경질적인 표정과 짤막한 폭언으로 대체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돕겠다고 일부러 고학년 담임을 자청하곤 했다. 사춘기 아이들이 마음을 터 놓을 사람이 없을 때 하는 행동이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누군가는 그 답답한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정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잘 들어지지 않는 경우, 아이들은 학교에서 폭발해 버린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신의 마음이 공감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아이,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이 너무 많을 때,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느라 쉴 시간이 없는 아이, 형제들 사이에서 잦은 다툼이 있는 아이, 모두 가정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이해받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가끔 학급 아이들에게 말의 힘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말의 힘에 대한 영상을 보여주며 거친 말은 결국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반복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말이 거칠어지면 행동도, 표정도 함께 거칠어진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확인하게 했다.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결정지어 가는 거라는 말도 해주었다. 그 시간만큼은 모든 아이들이 말의 힘에 대해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고학년 담임교사였지만, 가끔 그 아이들이 밉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원망하듯이 말하는 아이의 말을 더 관심을 갖고 들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행동을 고쳐보겠다며 다짐하는 아이의 반성문을 칭찬해 주기도 했다. 어르고 달래며 나쁜 언행을 좋은 것으로 바꿔가도록 도와주었다. 한 해가 지날 때쯤이면 심각했던 모습들이 누그러지곤 했다.

싸우는 아이는 문제아가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거다. 차분하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일 뿐이었다. 그 방법을 매일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말과 행동이 달라져 있었다. 그 아이들을 지도하며 나는 내 말투와 표정도 변화시켜 갔다. 교사로서 나는 한 아이가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까지도 찾아내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피하고 싶은 힘든 아이였지만 나를 더 좋은 교사로 성장시켜 주는 안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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