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에 담긴 제자의 사랑

by 수수


초등학생이었던 한 아이가 스물네 살이 되었다. 12년이 지났다. 몇 년 전부터 그 학생은 연말이나 스승의 날에 감사 편지를 보내 주었다. 카톡으로 보낸 편지다. 학급 회장을 맡았던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마음이 큰 학생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본이 되는 말과 행동을 하던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장난치며 나를 힘들게 할 때면 하지 말라고 말리던 아이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로 시작된 편지글이다. 군에 입대할 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해마다 받는다. 어느 순간, 기다리는 선물이 되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민서예요. 또 이렇게 찾아뵙게 되네요. 새해도 새해인지라 선생님 생각이 더 많이 났습니다. 저희 벌써 20살이 되어서 연락드려 봤어요. 초등학교 선생님께 연락드리려니 벌써 20살이 됐다니 시간이 참 빠른 게 느껴져요. 운전도 하고 다닌답니다. 전 이제 앞으로 시작이라서! 많은 일이 일어날 텐데 지금보다 선생님 더 많이 생각날 것 같아요. 항상 좋은 생각만 하라고 하신 말씀이 지금도 앞으로도 도움 될 것 같아요. 가끔 기쁜 소식 있으면 찾아뵐게요. 새해라서 연락 한 번 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년보다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년 1월.


차상수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자 민서예요.

선생님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죠? 5월 15일인 오늘이 스승의 날이자 성년의 날이라고들 하더라고요. 오늘은 더욱 선생님 생각도 많이 나서 이렇게 또 찾아뵙네요.

저는 작년에 파주 1사단에 입대해서 시후랑 같이 군복무 중이에요. 혹시 종민이 기억하세요? 그 친구도 입대해서 저희 맞후임으로 들어왔어요. 참 신기해요.

2022년 새해에 연락드렸을 때는 20살이었는데 21살이 돼서 또 연락드리네요. 비록 지금은 나라의 부름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꾸준히 배우고 성장하고 있답니다. 선생님이 저한테 주신 가르침에 있어서는 없어선 안 될게 됐고, 지금껏 그랬듯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매일 밤 내일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지만 어제보다 못할 때도 많아요. 그래도 오늘은 또 잘해보자 용기를 내보는 것은 선생님 덕분이에요. 매 순간 그럴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더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이런 말들도 부담이 될까 봐 마음만 남겨 둡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선생님.


2023년 5월 15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자 민서예요.

새로 맞이한 올해에도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죠? 제가 먼저 찾아뵙고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선생님 저는 2022년 9월에 입대해서 어느덧 2024년을 마주하고 3월인 다음 달 제대를 해요. 짧았다면 짧고 길다면 긴 군생활 속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제가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사회에 다시 발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앞으로의 제 새로운 나날들을 또 기대해 주세요. 살아가면서 주저하고 당장 앞에 벽이 보일 때가 분명 있었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언제나 그랬듯이 부모님의 가르침만큼 선생님의 멋진 가르침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긍정의 힘은 그 무엇보다도 대단한 것을요.

선생님 올 한 해는 더 행복하세요. 모든 일이 그럴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생각해 주시고 연락 주심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매 순간 너무 감사합니다. 선생님. 2024년 2월.



편지에 나오는 시후는 민서와 함께 내가 담임교사였다. 종민이는 다른 반 아이였는데, 이 아이들은 늘 함께 노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아이들이 인정해 주는 힘으로 멋진 교사생활을 해낼 수 있었던 거다. 어린아이들 모습 그대로 밝고 활발했던 아이들이었다. 지금은 모두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

내가 학교 특별활동 업무를 맡고 있을 때였다. 교내 전체 학생들이 참여하는 예술 행사를 준비했다. 그때 6학년 전체 학생이 난타 공연을 했다. 난타 공연 지도는 내가 맡기로 했다. 토요 방과 후 난타 지도를 하기 위해 배운 난타 실력을 발휘하여 6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난타를 가르쳤다. 다른 반이었던 종민이, 우리 반 시후, 민서는 방과 후에도 따로 연습한다며 교실에 찾아오곤 했다. 연습하는 시간보다는 장난치며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 아이들이 남아서 내 주변을 맴돌 때, 나를 좋은 교사로 인정해 주는 듯하여 행복했다.

나를 거쳐 간 학생들은 모두 성인이 되었고, 되어간다. 내가 지나 온 인생길을 아이들도 걸어간다. 교사로서 내가 가졌던 꿈은 소박했다. 나를 거쳐 간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주는 거였다. 고된 삶 속에서 지쳐 있을 때, 살짝 떠올려지는 사람이고 싶었다. 지푸라기 같은 힘이라도 되어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삶의 모습을 곁에서 보여 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청년이 된 제자가 써 준 편지는 나를 더 겸손하게 한다. 학생들을 더 존중하고 사랑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담게 한다. 나를 잊지 않고 찾아 준 멋진 제자로부터 나는 배운다. 누군가를 존중해 주는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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