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여동생이 있다. 어려서부터 사랑스럽고 귀엽다고 어른들로부터 칭찬받고 관심받던 예쁜 여동생이다. 나와는 달리, 그 당시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집을 잘 갔다'. 지금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힘들어하지만 말이다. 남편과 여러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아 그런지 늘 당당해 보이고 자신 있어 보이는 동생을 만나면 내 마음은 늘 기가 죽었다. 그 동생과 지난주 일요일에 함께 보냈다. 먼저 여행을 온 동생의 딸과 외손녀가 묵고 있던 숙소에서 이틀을 보낸 후, 서울로 가기 전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 만났다. 내 조카인 동생의 딸은 감기 기운이 있어서 숙소에서 쉬기로 하고 동생과 동생 외손녀와 셋이 점심시간에 만났다. 동생이 온다고 연락이 왔을 때 '내가 밥을 사줘야지.' 하면서도 살짝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동생을 나 혼자 만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언니와 셋이 만나서 식사를 한 경우는 많았는데 단둘이 식사를 한 경험은 기억이 거의 없다.
동생 그리고 조카딸과 함께 성산일출봉 근처의 갈치구이 집으로 향했다. 다섯 살인 조카딸은 나를 오랜만에 보아서 낯을 가리느라 나와 거리 두기를 했다. 점심을 먹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예전에 만났던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웃기도 하고 장난도 쳤다. 아이가 거리를 두고 피하려 할 때는 살짝 슬픈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무덤덤하게 괜찮다는 반응을 하는 내 자신이 좋았다. "할머니를 오랜만에 보니 무섭구나. 흰머리도 있어서 더 그렇지?"
어색할 줄 알았던 동생과의 점심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내가 동생 앞에서 언니로서 잘하는 모습을 느끼며 행복했다. 동생이 갈치구이를 잘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갈치구이와 전복돌솥밥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자신 있게 언니로서 식사비를 계산하는 내가 참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바닷가에 있는 카페에 갔다. 조카딸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웃어 주고 재미있게 말도 걸어주니 내 손을 잡고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몇 시간 전 나와 거리 두기를 하던 아이가 웃는 모습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웃어 주니 정말 행복했다. 그 과정이 지나는 동안 내 자신을 잘 다독이며 당당하게 그 상황들과 마주하며 대화할 수 있었던 나 자신이 멋졌다. 동생을 만나면 어색할까 봐 걱정했던 생각들이 다 사라졌다. 맛있는 커피도 가뿐하게 사주었다. 카페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주도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생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행복해하니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늘 질투 비슷한 느낌으로 동생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동생을 볼 때면 부러운 마음이 항상 앞섰다. 제주도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보내는 동안은 전혀 다른 마음이 가득했다.
동생은 조카딸이 있는 숙소에 다시 돌아갔다가 저녁에 조카딸과 함께 넷이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감기 기운이 조금은 사라져서 많이 괜찮아졌다고 하여 조카에게도 맛있는 음식 대접을 해주고 싶어서였다. 이러한 일도 처음이라 살짝 긴장되었다. 나는 카페 근처에서 산책하며 저녁 5시까지 3시간 반 정도를 기다리기로 했다.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었다. 좀 피곤한 느낌이 들어서 차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웠다. 명상음악을 들으며 몸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그렇게 쉬고 나니 저녁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문어 요릿집에서 만났다. 동생은 3세대의 가족과 함께 있었고 나는 혼자였다. 예전에는 몹시도 부러웠는데 지금은 다른 감정이 들었다. 애쓰며 잘 살아가는 동생 가족을 더 응원하게 되었다. 맛있는 문어 요리도 내가 미리 식사전에 계산했다. 다정하고 멋진 동생의 3세대 가족과 함께 자연스러운 식사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문어의 양이 적었던지 동생은 자기가 계산하겠다 덧붙이며 문어 튀김 한 마리를 더 주문했다. 비싼 가격이 신경쓰였던 것 같다. 동생이 덤으로 사 준 쫄깃쫄깃한 문어 튀김이 정말 맛있었다. 평소에 문어 요릿집을 지나가며 먹고 싶었지만 비싸서 그냥 지나쳤었다.
식사를 마치고 동생은 딸과 외손녀와 다시 숙소로 갔다. 감기 기운이 있는 딸과 엄마 곁에서 혼자 있을 손녀가 안쓰러운지 밤늦게까지 함께 있다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고 했다. 내가 있는 곳이 공항에서 가깝기에 하룻밤을 나와 함께 자고 새벽에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다. 밤 10시쯤에 조카가 운전하여 집에 왔다. 다시 돌아가는 조카에게 냉장고에 있던 귤 한 개와 바나나와 견과류를 건네주었다. 내가 이렇게 챙기는 일도 하다니 신기했다. 다음 날 새벽 동생이 공항에 갈 수 있도록 택시를 불러 주었다. 미리 결제되는 택시여서 내가 결제하게 되니 동생은 자신이 지불한다고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언니인 것이 행복함을 안겨 주었다. 동생이 떠나고 난 뒤 학교에 출근했다. 예전에는 형제들과 함께 보내다가 헤어지면 살짝 허전함 같은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
동생이 다녀갔다. 이제야 언니로서의 모습을 찾은 것 같은 경험을 했다. 60살이 넘어서야 나의 모습에 당당함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다른 사람들은 이 모든 일들을 늘 잘해오던 것일 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다. 제주도에서 나는 조금씩 어른다운 모습으로 성숙해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