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은 아주 좁다.
잠을 자기 위해 누우면 발끝 지점에 좁은 싱크대가 있다. 싱크대 위에는 자리가 없어서 들여놓지 못한 그릇들이 조금 쌓여 있다. 머리맡 바로 가까이 베란다 문밖에는 세탁기가 있다. 세탁기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현관문으로 나가는 통로 옆에는 작은 냉장고와 붙박이장이 나란히 놓여 있다. 붙박이 장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옷이 어느 정도는 구분이 되어 걸려 있다. 누워있는 몸 옆에는 붙박이 서랍장이 있고, 그 위에 작은 흰색 밥솥과 커피포트, 나무 십자가, 예수님 형상이 새겨진 작은 액자가 있다.
텔레비전은 다이소에서 5천원에 산 강아지 그림의 천으로 덮어 놓았다. 그 위에 딸과 함께 제주도 화실에서 그린 자그마한 그림 두 작품이 아슬아슬하게 올려져 있다. 그 액자 바로 옆에는 딸이 써 준 엽서가 휘어진 채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양새다.
텔레비전 옆에는 당근마켓에서 구입한 흰색의 귀엽게 생긴 밥솥 옆에는 식물 두 가지가 각각의 페트병 안에 있는데 싱싱하게 잘 크고 있다. 이곳에 들어올 때 본 식물인데 아직 내 손에 의해 잘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서랍장 바로 옆에 붙어있는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화장품, 그리고 몇 권의 책들과 공책들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맞은편에 좁다란 화장실이 있다.
방의 전체 길이는 다섯 걸음 정도가 된다. 폭은 3걸음 정도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몇 개월 동안 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에게 필요한 일들을 다 할 수 있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밥도 해 먹고, 커피도 마시고, 빨래도 하고, 일기도 쓰고, 식물도 키운다.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나와 함께 있다. 이것들 외에 무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낸다.
문밖에 나가면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라는 풍족한 생각이 든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바람도, 공기도, 새도, 꽃도, 주변의 풍경들도, 산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부자다. 이런 풍족한 생각을 하면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은 암 수술 후의 삶으로부터다. 암이 가져다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