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다. 나와 딸은 짧은 반바지와 슬리퍼를 신고 바다로 향했다. 선글라스와 모자도 챙겼다. 하늘이 청명하다. 하늘빛이 바다를 두르고 있다. 나와 딸은 바다색이 군데군데마다 다름을 발견했다. 어느 곳은 맑은 청색, 그 옆은 진하고 맑은 초록색, 모래사장과 가까이 있는 곳은 은빛이다. 검은 바위 색이 군데군데 보인다.
나는 딸과 함께 맑은 함덕해수욕장 바다에 들어갔다. 고운 모래와 물이 발바닥을 보드랍게 감싼다.
“엄마, 바다색이 달라.” 딸이 말했다.
“어제와 오늘 색이 다르네.” 나는 어제 본 바다색을 떠올리며 말했다.
“엄마, 어제는 바다색이 우중충해서 바닷속을 볼 수 없었던 거 기억나? 오늘은 바닷속 형체와 색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맞다. 어제와 오늘 바다색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바다에 온 것 같네. 어제는 하늘에 회색 구름이 깔려 있었어. 오늘은 햇살이 끝내준다.” 나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엄마, 갑자기 아이들의 삶이 바다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딸의 이 한마디가 나의 마음을 울렸다. 그렇다. 바다는 하늘의 기분에 따라 색이 변한다. 하늘이 부모라면 바다는 아이들이다. 부모의 기분에 따라 아이들의 정서가 나쁘게 형성되기도 하고 안정적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가정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면 자녀들의 마음도 짙은 회색처럼 된다는 것을 딸은 경험했다.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화법으로 가정 분위기를 사로잡았던 남편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남편은 자정이 지나서 세탁기를 돌린다. 오래된 세탁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간다. 나는 베란다 옆에 있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세탁기 소리에 놀라 깬다. 이불을 뒤집어쓰기도 하고 음악도 틀어 본다. 세탁기 안에는 남편의 속옷과 수건 한 장, 양말 한 켤레가 전부다. 나는 매일 밤 세탁기 소리와 함께 잠드는 고통을 겪었다. 방과 거실 사이에 벽 하나가 있다. 남편은 새벽 1시까지도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남편에게 세탁기 소리와 텔레비전 소리가 안 들리게 해달라고 말하지만 늘 무시당한다. 남편의 날카로운 눈초리와 후려치는 목소리를 되받고 만다. 남편의 밀어붙이기식 습관 중 몇 가지다. 딸과 아들은 이런 가정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딸은 어린 자녀들과 놀아주는 부모를 보면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 듯 미소를 띠고 좋아한다.
회색 하늘이 바닷속 해초, 모래, 바위들을 볼 수 없게 하는 것처럼. 오늘은 노르스름한 모래, 군데군데 놓여 있는 돌, 초록과 갈색빛의 해초 모습을 보았다. 밝은 햇빛 덕분이다. 딸과 나는 이 신비로운 바닷속 색깔들에 환호하며 첨벙첨벙 달렸다.
“괜찮아.” “잘 해냈어.” “다음에 다시 하면 되지.” “힘들었지!”
나는 맑은 하늘을 닮은 엄마로 성숙해 가기 위해 가까이 있는 딸의 손을 꼭 잡아 준다. 바닷속은 하얀 구름을 띄운 하늘빛의 사랑을 받으며 자기 모습을 제 색깔대로 뽐내고 있다. 신비롭기까지 한 그 풍경을 보고 싶어 고개를 숙인다. 햇살만큼 환한 웃음이 절로 난다. 시원한 물과 부드러운 모래의 감촉이 우리를 향해 속삭이는 듯하다. ‘지금 모습 그대로 좋아.’
하늘색이 바다색을 결정한다. 나는 맑은 하늘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