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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잘 하고 싶은 나.

by 수수


"엄마, 엄마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듣고 있어? 반응을 해줘야지."

딸과 함께 다니다 보면 딸로부터 이런 말을 귀가 닳도록 수시로 듣게 된다. 마치 아침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열면 맑은 새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주듯이 그렇다. 오늘도 여지없이 그런 모습으로 딸의 충고가 이어졌다. 6월 6일 현충일, 딸과 나는 오후 1시쯤 집을 나섰다. 제주도 몽그레 월정리 점에서 맛이 다른 과자들과는 다르고 특별하다는 과자를 사고, 사려니숲에 갔다가 제주할망밥상표선점에서 생선 듬뿍 나오는 저녁을 먹은 후, 매월 첫째 주 화요일 저녁에 더 바이블미니스트리 학교에서 열리는 예배에 다녀오는 일정을 따라 하루를 보냈다. 딸과 함께 있으면 차 안에서 또는 걸으면서 공기를 마시듯 거의 쉬지 않고 대화한다. 그럴 때 간혹 우리의 대화가 잘 이어지지 못하고 멈추는 상황들을 맞이한다.

편백나무가 줄 맞추어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사려니 숲 길을 걸으면서 딸과 대화하던 중에 "엄마, 지금 내 말 안 듣고 딴생각하고 있지."라며 말을 하던 딸이 갑자기 나에게 던지는 말이다. "아니야. 다 듣고 있어" 나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나는 딸이 하는 말을 놓치고 있었다. 강아지 같은 딸이 그 순간을 바로 알아챈 것이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나만의 다른 생각에 잠깐 빠질 때가 있다. 그 순간, 상대방의 이야기를 놓치고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피톤치드가 온몸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려니숲길을 걷고 난 후, 저녁을 먹으러 가는 중에 차 안에서 다시 딸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딸로부터 바로 폭죽 같은 직격탄이 날아왔다.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간혹 딸에게 갑작스럽게 말하고 싶은 장면이 보이곤 한다. 그럴 때 나는 딸이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바로 내가 본 것에 대하여 큰소리로 호들갑을 떨며 말을 한다. 그러면 딸은 열심히 운전하면서 하던 말을 딱 중단해 버린다. 계속 듣고 싶은 이야기인데 잘라버린 것이다. 제대로 반응을 해줘야 하는 상황에 나의 관심거리가 나타나자, 내 말로 딸의 이야기를 닫아버렸기에 얻은 결과다.

나의 듣는 태도가 2018년 8월 폐암 수술을 계기로 점점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상대방으로부터의 반응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어린 시절 엄하셨던 아버지와의 대화, 형제들과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던 일들, 남편과의 대화 속에서 무시당한 느낌이 깔려 있어서다. 나에게서 이 생각들을 거두어 준 사람들이 있다. 폐암 수술 후,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준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 이야기를 하면서 하는 용기를 키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힘도 길러 가고 있다.

연휴가 끝나고 처음 출근한 날, 누군가와 대화할 기회가 주어졌다. 내가 퇴근하려고 할 때 두 분의 젊은 선생님이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른 길로 혼자 가려다가 두 분을 따라가려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선생님 같이 가요” 내 목소리가 맑은 하늘에 퍼졌다. 맑은 하늘의 하얀 구름처럼 가벼워진 마음을 안고 두 선생님과 걸으며 대화했다. “선생님들은 제주도에서 태어났어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맑은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넸다. 교문까지는 100미터 거리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서 참 좋겠어요.” 나는 두 선생님을 바라보며 걸었다. 어떤 말을 건네야 두 분이 신나서 말을 할 수 있을지 사이사이 생각하면서.

대화를 잘 하고 싶은 나는 오늘도 이렇게 잘 듣고 공감하며 말할 기회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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