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타고 다니는 차는 2003년식 쏘렌토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면역력이 떨어져 암에 걸린 것처럼 자동차도 몹시 아프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차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아는 것도 없었다. 지금도 아는 것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타고 다니는 차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폐암 수술 후 남편을 떠나 다른 지방에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쏘렌토 자동차는 내 생활에서 필수품이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 편리함을 안겨주던 차가 앓기 시작했다. 2019년 포항에서 지내던 때부터 차에 내장된 부품이란 부품은 해마다 두세 가지씩 새것으로 바꾸어야 했다. 2023년 1월에 제주도로 내려오면서 차도 가지고 왔다.
1월 25일, 딸과 함께 제주대학교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다녀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딸과 함께 자동차 안에서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텅, 텅' 하고 차에서 소리가 났다. 차의 아랫부분이 도로 바닥에 닫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현대해상 보험회사에 전화했다. 한밤중에 자동차전용도로에서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놀란 마음을 딸 앞에서 추스르려고 애썼지만, 딸에게 들키고 말았다.
"엄마, 나도 이런 때 있는데 그때마다 그냥 더 사실을 냉정하게 보면 진정되더라고."
나의 긴장된 마음을 딸이 누그러뜨려 줬다.
"엄마, 이제 엄마가 다 알아서 해야 하잖아. 정말 냉정해져야 해."
그날 밤 우리는 차와 함께 시내까지 견인되어 갔다.
"원래, 차만 견인하고 사람은 같이 못 가는데 이곳에 대중교통이 없으니까, 시내까지만 태워다 드릴게요."
"차 상태가 어떤지 카센터에서 확인해야 하는데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그냥 카센터에 놓고 등록해 놓을게요. 다음에 카센터에 연락해서 알아보세요." 기사님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셨다.
2월 25일 토요일 밤, 쏘렌토 차는 카센터에 놓여졌다. 2월 27일 월요일, 자동차가 있는 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쏘렌토가 몇 년식인가요?'
"네. 2003년식입니다."
"자동차 변속이 일어날 때 자동으로 잡아주는 조임새가 나갔습니다. 그래서 '턱, 턱'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던 것입니다."
카센터 직원분은 자동차의 상태를 전문용어를 들어가며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앞으로도 운행할 때 소리는 나겠지만 자동차를 운행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수리에 필요한 부품이 있는지 전국적으로 알아보았지만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폐차장에 연락해서 쏘렌토 차가 있으면 알아볼게요. 그런데 언제 연락이 올지는 몰라요."
그렇게 해서 3월이 지나갈 무렵까지 내 자동차는 카센터에 보관되어 있었다.
4월이 다가올 무렵 카센터에서 연락을 해주셨다.
" 폐차장에서 부품이 나와서 우선은 가능한 조치를 했습니다. 동네에서 살살 움직일 때는 소리가 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내 자동차 소렌토는 그 이후로 더욱더 크게 소리를 냈다.
'쿵, 쿵' 뜸하게 나던 소리가 이제는 1초 단위로 났다. 운행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는 했지만 운전하는 동안 긴장이 지속되었다. 결국 나는 출퇴근을 할 때 버스를 이용했다.
딸이 제주도에 다니러 온 7월 중 2주간 동안 우리 모녀는 쿵 쿵 거리는 자동차를 그대로 이용했다.
"엄마. 이제 안돼. 폐차해야 해. 엄마 위험해서 안 돼."
"엄마가 새 차도 구입하고, 이제 엄마가 해야 해. 아빠 두려워하지 말고. 엄마가 잘못한 일이 아니잖아."
나는 어떤 일이 잘못되면 남편을 두려워한다. 그동안 남편으로부터 그렇게 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오래되어 고장 난 것인데도 남편으로부터 비난받는 소리를 들을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렇게 반응을 보이는 남편을 두려워 하지 말고 이제는 다 벗어나서 나 스스로 내 것을 당당히 챙기고 떳떳하게 내가 한다고 말하라는 딸의 충고다.
"사실 아빠가 뭐 해주는 것도 없잖아. 그냥 화만 내는 거지. 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엄마, 이제 할 수 있지? 아니 엄마가 해야 해. 나랑 약속해. 엄마가 하겠다고."
딸이 엄마이고 내가 딸이 된 느낌이다.
7월 22일, 방학이 시작되어 남편이 있는 서울에 왔다. 나는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자동차에 대한 말이 나왔을 때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할게. 폐차도 내가 하고, 새 차를 사는 것도 내가 알아서 할게."
남편과 떨어져 지낸 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쉬운 말이지만 나에게는 대단한 사건으로 남는 일이다. 아주 여유 있는 말투와 자신이 넘치는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는 멋진 모습의 나를 보았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을 하나씩 당당하게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