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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5년의 세월은!

by 수수

엄마가 폐암 수술을 한때가 벌써 5년이 흘렀구나.

하루가 1년처럼, 1년이 10년처럼 여겨졌던 시간이었지. 수술 후 몇 개월 동안은 수술 부위의 통증과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이 엄마의 하루하루를 지배하려 했단다.

그동안 살아왔던 익숙한 공간과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을 선택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지. 서울을 거주지로 하고 살아온 세월이 어느새 40년을 채우고 있었어. 엄마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왔으니, 그때부터 2018년 수술하기 전까지 꽤 긴 세월을 서울에만 머물러 있었네.


수술 후, 암이 완치되었다는 말 듣기를 기다리며 지내는 하루하루는 그동안 지나온 40년의 세월보다 더 길게 느껴졌단다. 처음에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지.

나에게는 이제 희망이 없는 건가?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건가?

나는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가지?

암은 치료될 수 있는 건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그동안 나는 왜 건강을 잘 챙기지 않았지?

많은 질문들을 한꺼번에 누르고 한 걸음 한 걸음 걷기부터 시작했단다. 오직 아들딸을 오랫동안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지. 그 마음이 엄마를 걷게 했단다. 신기하지?

마음이었어. 그 마음은 위력을 발휘했지. 엄마는 그 마음을 안고 암에 좋다는 요리를 했고(암에 좋다는 버섯, 마늘, 양파, 야채들을 썰어서 익힌),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잠을 충분히 자고 걷기를 하루 2시간 이상했지. 그 마음이 그랬단다.


바닷가를 걷고, 산을 오르내리고, 살고 있는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 몸도 마음도 쑥쑥 커가는 엄마.

아픔을 겪은 자만이 다른 이들의 아픔을 공감한다는 말을 진하게 깨닫는 시간이었단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얼마나 진실한 진리인지 엄마 스스로 뼈저리게 느끼는 값진 일상이었지.


엄마의 열정을 쏟아부었던 교사의 삶.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암이라는 것이 찾아와 그 열정의 삶을 떠나야만 했던 우울함. 사회 공동체 생활에서 버려진 듯한 절망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자처럼 살아가는 엄마 자신의 모습과 마주할 때 느끼는 허망함. 엄마는 이 모든 것들과 싸워 이겨야만 했단다. 그 이길 힘을 마음이 주었어. 마음은 엄마를 행동하게 했지.

그 마음은 믿음과 갈망이었어. 아들딸을 오랫동안 볼 수 있다는 믿음과 간절함말이야.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구나.

"이제 병원에 오시지 마세요."

2023년 8월. 서울대병원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이란다.

처음에는 이 말이 서운하게 들렸단다. 해마다 병원에서 엄마를 챙겨줘야 하는데 엄마 스스로 관리하라니 두려운 마음이었지. 이상하지 않니? 건강하다고 이제 오지 말라고 하는데 말이야.

2018년 수술 후, 엄마는 제주도, 강릉, 포항, 강릉, 다시 제주도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단다. 덕분에 엄마는 다채로운 멋진 경험을 하고 있지. 5년이 왜 길게 느껴졌는지 알 것만 같아. 하루하루 시간 시간을 절절하게 감사하며 매달리다시피 살아서일 거라는 생각으로 결론을 내렸어.


엄마가 보낸 5년의 세월은 아들딸에게도 길고 힘든 시간이었지.

사랑스러운 얘들아. 엄마가 무너질 것 같았던 5년 동안 열렬한 팬이 되어 응원해 주어서 고마워.

엄마가 아팠던 만큼 성숙해진 모습이 보이지?!! 사랑해 아들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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