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9월 1일. 초등학교 교사 차상수. 처음 출근한 날이다.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첫발을 내디뎠다. 시골에서 살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서울에서 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만 했고, 대학생 때는 학교 공부는 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다. 세상 물정 모른다는 말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조용하고 말 없던 나는 초등학교 어린아이들 앞에서도 수줍은 모습으로 늘 긴장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 선다는 건 으르렁대는 사자를 보고 있는 것만큼이나 나에게 큰 두려움이었다.
나를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볼까 봐. 내 말을 듣지 않고 딴짓할까 봐. 내가 말하면 엉뚱한 말로 대꾸할까 봐.
그러던 초임 젊은 교사가 지금 나이 60살이 되었다. 36년여의 세월은 어느새 폭포수가 떨어지듯 훅 흘렀다. 첫 제자의 나이가 47살이다.
나는 신이 아니다. 그러기에 내가 어찌 나를 거쳐 간 제자들에게 좋은 말만 하고 따뜻하게만 대했으랴. 절대 그렇지 않았음을 안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몸부림치며 애썼을지라도 교사인 나로 인해 마음이 아팠을 제자도 있었으리라. 아픈 마음이, 위로받지 못한 마음이, 그대로 멈춰 고여있지 않고 구름이 흘러가듯 흘려보내졌기를 소망한다. 그 자리에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년을 8년여 남겨 놓고 폐암 수술을 했다. 건강이 회복된 후, 아이들이 보고 싶어 다시 기간제로 학교에 들어갔다. 정교사로 서울에서 33년, 기간제 교사로 포항에서 1.5년, 강릉에서 1년, 제주도에서 1년을 초등학교에서 보내고 있다. 사람들은 천직이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함께 할 때 마음에 상처받을 때도 있다. 서운한 마음이라고나 할까. 내 자녀로부터도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좁은 교실 속 아이들은 나에게 잘 살아가는 지혜를 발견하게 하는 통로가 되어준다. 내 인생을 가꾸어 주는 거름도 되어 준다. 내 모습을 비춰 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새벽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소망을 안겨 주기도 한다.
30년을 훌쩍 넘긴 세월 동안 함께 하면서 어느 땐 거울이 되어 주고, 소망을 안겨 주고, 절망도 주고, 비통함도 주고, 기쁨과 감동을 안겨 주기도 한 이야기를 이곳에 하나하나 담으려 한다. 소박한 회고록.
아이들도 나도 희망이다. 새벽 하늘 작은 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