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여기서 멈추라고. 세우라고 버스를. 기사는 끝까지 무시했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중간, 사람 하나가 억지로 들어가는 버스 복도에서 하나 둘 서기 시작 하기 직전까진. 사람들이 하나둘 줄 서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 따라가면 나는 살 수 있겠다 생각했고. 옆 사람이 움직이면 나도 움직여야겠다. 살고 싶었다. 아니 집으로 가고 싶었다. 가만히 있던 옆 사람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나도 뒤따라 일어났고. 버스가 멈추길 기다렸다. 그때 기사가 심각한 걸 느꼈는지. 아니면 뭔가 잘못된 게 맞는지. 핸들이 자동으로 움직였는지. 버스가 멈췄다. 그러더니 기다리고 기다렸던 버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모두 내리니 혼자 아시안이었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미 경찰은 우리의 버스를 뒤따라 왔다. 이미 버스 뒷 엔진에서는 붉은 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우리가 느낀 게 맞았던 것이다. 엥? 그런데 경찰은 두 손에 딱 들어가는 작은 소화기를 가지고. 한 30분 정도 도로에 우리 모두가 추위에 떨고 있었을 때였을까. 실랑이를 하고는 불이 다 꺼졌다며, 다시 버스에 올라타라고 하는 경찰의 말. 모두가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면서 나는 어 버스를 탈 수가 없다고. 혼잣말로 중얼중얼거렸다. 몇몇은 내 짐이 버스 안에 있으니 나는 타겠다고 이야기 했다. 한 명이 그 버스를 올라 타니 사람들이 줄줄 따라갔고. 아까 옆에 있었던 사람을 나는 찾아 따라 올라탔다. 그런데 버스 안은 마치 사우나처럼 뜨거웠고 아마 이건 폭발 직전이다라는 느낌 아닌 촉이 왔달까. 마치 죽음의 버스를 타는 그 느낌. 사람들은 살겠다고 뜨거운 뒷 엔진 있는 의자에는 앉지 않고. 다들 앞으로 앉았다. 나는 결국 또 엔진 앞에 있는 의자에 앉게 되었다.
또 몇 분을 갔을까 버스는 더 뜨거워졌다. 기분 탓이었을까. 왜 땀이 나는 거 같을까. 눈물이 아닌 땀은 오랜만이었다. 뒤에 있었던 사람들이 또 소리쳤다. 뒷 창문을 봐 불이야! 하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뒤를 봤을 땐 뭐랄까 홍시색깔이었나 김치색깔이었나 붉은 불길이 버스 뒤를 뒤덮고 있었다. 사람들은 또 한 사람이 억지로 서는 버스 복도에 한 명 한 명 서기 시작 했고. 당장 내려 달라고 기사에게 이야기했다. 기사는 소리만 지를 뿐.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분명 들었다. 나는! 나는!! 나는 분명!! 브레이크를 밟았어!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고!!라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던 영어 단어들. 순간 생각했다. 넷플릭스 영화 안 인가 지금? 듣도 보도 못한 욕도 들렸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살겠다고 중간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버스는 여전히 더웠다.
기사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 후 사람들은 더 패닉에 빠졌다. 우왕 좌와 이러다 진짜 큰일 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일어나지 않고 벌써 죽음을 기다리는듯한 백발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던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긋한 영어는 처음이었다. 얘들아 진정해,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 너네들이 그렇게 한다고 바뀌는 건 없어.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한 명씩 한 명씩. 아마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게 틀림없다. 할아 버지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자리에 앉자마자 목에는 학생증을 두르고, 원래는 들고 다니지도 않는 여권을 그날따라 챙기고 싶었던 이유가 지금이구나 하면서 가방을 정리했다. 아무도 내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텐데, 만약 내가 타 버리면 누가 나를 알아보려나. 학생증은 다 녹지 않을까. 뭐 이런저런 담담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