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편과 손편지가 귀한 이 시대에...
외출했다가 돌아와보니 우편함에 편지가 꽂혀 있던 적이 있었다.
볼펜으로 직접 주소를 적은 흰 편지봉투였다. 인편인가 싶어 봤는데 우표까지 붙어 있었다. 덕분에 요즘 우표가 450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발신인 란에 이름없이 주소만 적혀 있었고, 그 주소는 우리집에서 도보로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수신인 란에도 주소만 있었는데, 우리집 층수가 정확히 적혀 있었다. 혹시 가구별로 다 보낸 건가 해서 우편함을 다시 봤지만 우리집에 온 것만 있었다.
궁금한 마음을 품고 봉투를 뜯어보니 '여호와의 증인'과 관련된 글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기대로 부풀었던 풍선 같던 마음에서 푸슈슈 바람이 빠져버렸다.
그러나 이내 안쓰러운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편지를 쓴 사람은 도입부에 자신이 ㅅㅎ이 할머니라고 했다. 나는 이 할머니도 ㅅㅎ이도 몰랐고, 종교가 없는 내게 그 편지에 적힌 내용은 설득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그 편지를 쓰레기통에 넣을 수가 없었다. 양면괘지 한 페이지 가득 손글씨를 적어 내려갔을 어떤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그려졌던 것이다. 할머니는 아마도 순수한 마음으로 이 편지를 받을 누군가가 자신처럼 하느님을 믿고 충만한 마음이 되기를 바라며 한자 한자 꼭꼭 눌러 썼을 것이다.
누군가가 보면 바보 같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자신만은 순수한 마음으로 이런 편지를 보내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의 어느 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우편함에 무언가가 꽂혀 있는 걸 보았다.
행운의 편지였다. 누구나 떠올리는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로 시작하는 그거 맞다.
다들 알다시피 그것은 행운의 편지라면서 행운을 전파하지 않으면 불행을 맞을 거라는 협박으로 끝난다. 돈만 안 걸려있을 뿐이지 다단계가 따로 없다.
그때도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이런 걸 생전 처음 받아 본 나는 정말 나만 받은 '행운'의 편지인줄 알았다. 방에 들어와서 이걸 어떻게 전파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나는 이미 이 편지의 행운을 철썩같이 믿고 휘둘리고 있었다. 구기거나 낙서하지 말라는 문구대로 책상 위에 신주단지마냥 고이 펼쳐놓기까지 했다. 일일이 적어서 하기에는 행운의 편지가 시키는 숫자가 많아 엄두가 나지 않았고, 하지 않자니 겁이 났다. 이 편지가 프린트 된 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결국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집에서 일찍 나선 나는 문방구에 들러 반 친구들 수만큼 행운의 편지를 복사했다. 문방구 아주머니는 내용을 보지 않은 건지 아니면, 행운의 편지를 모르는 건지 묵묵히 복사만 해주었다.
복사한 편지들이 구겨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챙기며 진심으로 친구들에게 행운이 전달되기를 바랐다. 어쩌면 실제로 행운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그들이 내게 고마워하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등교하자마자 반 친구들 책상마다 복사한 행운의 편지를 한 장 한 장 놔두었다. 이게 뭐냐면서 호기심을 보이는 친구도 있었고, 어제의 나처럼 깡패같은 행운에 당황하는 친구도 있었다.
조회시간 전부터 어수선해진 교실의 진상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은 내게 이런 건 마음 약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거라며 믿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행운의 편지의 진실을 그제야 알게 된 것도 부끄러웠고, 내가 친구들에게 그런 나쁜 짓을 전파했구나 싶어 또 부끄러웠다.
그렇게 행운의 편지 전파 소동은 금방 일단락되었고, 나에게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바람 터진 풍선 같던 마음을 다시 주워 편지와 함께 책상 위에 놓아 두었다.
부디 이 할머니가 얼굴도 모르는 수신인에게 보내는 종교 전파의 손글씨를 쓰는 대신, 손녀에게 손편지를 받으시기를 바랐다.
당신이 믿는 하느님이 진정 자비롭다면 불행으로 심판하고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사랑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말이다.